소개글
기술적 측면과 예술적 측면에서 나눠서 바라보는 고려청자와 중국청자의 비교 분석
목차
1. 고려청자의 성립과 발전
2. 고려청자와 중국청자의 비교
(1) 기술적 측면
(2) 예술적 측면
본문내용
기술적, 예술적 측면에서 바라본 고려청자와 중국청자의 비교 분석
“낙양의 꽃, 건주의 차, 촉의 비단, 정요의 자기, 절강의 칠기, 오의 종이, … 거란의 안장, 하의 검, 고려의 비색 … 모두 천하의 제일인데 다른 곳에서는 따라 하고자 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太平老人, 『袖中錦』, 天下第一條 “洛陽花, 建州茶, 蜀錦, 定磁, 浙漆, 吳紙 … 契丹鞍, 夏國劍, 高麗秘色 …”) 이 문헌은 송 시대 천하제일로 꼽히는 중국 각지의 특산물과 동식물 등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천하제일의 산품 중에 백자는 중국의 정요 자기를, 청자는 중국 청자가 아니라 고려 청자를 꼽았다. 태평노인이 사용한 ‘고려 비색’이라는 용어에서 秘色은 청자를 의미하는 일반 명사였다. 태평노인은 고려청자의 색이 秘色이 아니라 翡色인 것은 몰랐으나 그가 중국에서 고려청자를 보았음을 분명한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1) 이렇게 우리의 고려청자는 청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할 정도로 기술적 측면과 예술적 측면에서 모두 높은 수준을 이룩하였다.
<중 략>
중국 송대 자기에서 돋보이는 요소는 단연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무늬이다. 모란은 장인들의 능숙한 솜씨를 바탕으로 송대 자기의 주요한 장식무늬로 보편화되었고, 불교 사상에 바탕을 둔 연꽃 역시 많이 이용되었다. 왕실용 자기에는 용과 봉황이 권위를 대표하는 주요 무늬로 등장한다. 처음 고려에 청자가 등장할 때에는 꽃병, 향로, 매병 등 중국 도자와 닮은 기형이 주로 만들어졌다. 매병은 본래 술을 담는 용도로 중국에서 널리 쓰던 기형이다. 18세기 중국에서는 매병에 매화가지를 꽂아놓고 감상하기를 즐겨 매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7) 상형청자의 경우 중국의 영향도 받았는데, 도교 인물, 사자, 불상, 나한상과 같이 종교적인 성격의 소재는 북송 상형자기에 공통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 상형청자는 종교적 소재보다는 원숭이, 석류, 참외, 오리, 원앙 등과 같이 동식물의 형태를 소재로 삼아서 사실적으로 조형화하였다.
참고 자료
최준식, 『한국문화는 중국문화의 아류인가?: 세계인이 이렇게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소나무(2010), 201~202쪽.
윤용이,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 돌베개(2007), 183쪽.
장남원, 『고려중기 청자연구』, 혜안(2006), 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