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형성비평] -광야(曠野)의 씨앗-
- 최초 등록일
- 2013.04.30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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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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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포기의 절정
2. 시공(時空)의 재생
3. 시인의 과업
4. 봄의 신명
5. <광야>의 오류
본문내용
1. 포기의 절정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 가혹한 절망, 폐색(閉塞)과 동결, 나아갈 곳이 없는 막힘과 임리(淋?)한 혈흔, 굴복과 실추.
하늘이 끝난 고원에 있어 높음은 희망일 수도 승화일 수도 없다. 그것은 절망의 꼭대기, 포기의 절정일 뿐이다. 그 위에 선다고 할 때, 그것은 발돋움일 수가 없다. 위가 이미 위가 아닌 곳에 이 작품의 시적 자아는 서 있다. 단두대 위에 올라 섰을 때, 누가 그 ‘위’에다 긍정적인,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가 있을까. 올 데 갈 데 없는 곳까지 왔다는 생각, 더 이상 어쩔 수 없이 휘몰려와 있다는 생각, 그것도 세계의 끝인 듯한 저 하늘끝의 극지에 쫓겨 와 있다는 생각에 맞물려 있는 ‘고원의 위’고 보면 위기감의 고조가 있을 뿐이다. 이런 위답지 못한 위의 상념은 칼날진 서릿발로 한층 더 강조되고 있다.
< 중 략 >
4. 봄의 신명
하늘이 열리고 땅이 트일 때 말갛게 다시 태어날 조국에 부치는 염원이 직접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시의 바닥에서 응어리지고 있다. 하지만 우주의 갱신과 조국의 재생에 부치는 염원은 지금 당장으로는 봄에 기대어 있다. 이제 다가오고 있는 봄의 전조, 아주 작은 징조에 기대어 있다. 조국을 우주에 깃들게 함으로써 조국에 바친 소망을 위해 봄은 이토록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시인의 신앙이다. ‘노래의 씨앗’이 따로 심어진 것이 아니다. <광야>라는 한 편의 시작품 그 자체가 이미 씨앗이다.
봄기운은 신명과도 같은 것이다. 풀리는 마음은 달뜨는 마음이었고, 둥싯거리는 마음은 곧잘 터져 오르기 마련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봄기운이라거나 봄바람이라 했다. 그래서 신을 불러 굿을 올렸다. 봄기운에 신명마저 더하면 사람들은 걸립(乞粒)을 돌고, 농악을 울리고 춤을 추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