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마르크스의 생애
- 최초 등록일
- 2002.12.17
- 최종 저작일
- 2002.12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마르크스의 생애를 연대순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 마르크스의 생애
1) 1837~1843
2) 1843∼1844
3) 1845∼1847
4) 1848∼1850
5) 1850∼1852
6) 1853∼1859
7) 1860∼1867
8) 1864∼1882
본문내용
마르크스는 1818년 프러시아의 라인 주에 있는 트리에르에서 팔 남매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양친의 조상들은 여러 대를 이으면서 랍비 노릇을 해왔다. 그의 부친은 상당히 유망한 법률가였고 계몽시대의 영향을 크게 받아 개방적인 사람이었으며 나폴레옹의 몰락과 라인주-프러시아 병합에 따른 반 유대 법률이 그의 지위를 위태롭게 했을 때 세례를 받았을 정도로 애국자였다. 1830년 마르크스는 트리에르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5년간 수학하였다.
그 다음 해 그는 본 대학 법률학부 학생으로 입학했다. 여기에서 그는 열정적으로 시를 썼고 다른 어떤 학생보다도 더 많은 돈을 소비했으며 결투에 참가하는가 하면 「취중 소란에 의한 안면방해」죄로 투옥되기조차 했다. 일년 후 그는 베를린으로 전학했다. 그 당시 베를린 대학에는 여전히 헤겔 철학이 풍미하고 있었는데 마르크스는 이 대학에서 1841년까지 머물러 있었다. 여기에서 그는 친구들과의 교제를 끊고 온갖 강의에 수강 신청을 했고 악착스레 공부했다. 1835년 여름 그는 제니양과 은밀하게 약혼을 했는데 바로 이 사건은 그의 시적 정열을 다시 부채질했다. 그가 부친에게 알린 바에 의하면 약혼한 그 첫해 중에 마르크스는 시는 는 물론이요, 300페이지에 달하는 법률용어의 복합분류, 형이상학의 새로운 기초제계, 희극적 소설, 비극적 희곡 등을 저술했으며 헤겔주의로 전향하여 철학적 대화록을 저술했다. 마르크스는 직업적으로 법률가가 되어 볼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베를린 대학의 급진적 지식층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선택한 법률직을 대학교수직으로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그 당시 브루노 바우어는 과격한 신약 비평 때문에 베를린에서부터 본으로 옮겨 앉아 신학 강사직에 있었는데 마르크스는 바로 이 브루노 바우어의 알선으로 본 대학에서 일자리를 얻기를 희망했었다. 대학에 일자리를 얻을 목적으로 마르크스는 「데모크리토스와 에피큐로스의 자연철학의 차이」라는 학위 논문을 시작했다. 이 논문으로 마르크스는 철학박사 학위 수여 받았다.
참고 자료
데이비드 맥렐런. 『마르크스의 世界』. 서울 : 책세상, 1989
데이비드 맥렐런. 『칼 마르크스의 思想』. 서울 : 民音社,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