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가][시가문학]조선시가(조선시대 시가문학)의 발생, 조선시가(조선시대 시가문학)의 갈래, 조선시가(조선시대 시가문학)의 잡가현상, 조선시가(조선시대 시가문학)의 주요작가
- 최초 등록일
- 2013.02.23
- 최종 저작일
- 2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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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가][시가문학]조선시가(조선시대 시가문학)의 발생, 조선시가(조선시대 시가문학)의 갈래, 조선시가(조선시대 시가문학)의 잡가현상, 조선시가(조선시대 시가문학)의 주요작가
목차
Ⅰ. 개요
Ⅱ. 조선시가(조선시대 시가문학)의 발생
Ⅲ. 조선시가(조선시대 시가문학)의 갈래
Ⅳ. 조선시가(조선시대 시가문학)의 잡가현상
Ⅴ. 조선시가(조선시대 시가문학)의 주요작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잡가의 갈래적 불안정성은 잡가라는 문학예술의 존재대상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어 왔다. 개념적 이해에 대한 혼란은 국문학 연구자와 국악 연구자 사이의 견해 차이로 집약된다. 전자는 잡가를 문학적 측면에서 갈래적으로 개념화하고자 하는데 비해 후자는 문학적 측면에서의 개념화 자체를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국악 연구자의 입장에는, 잡가는 문학적으로 개념화할 수 있는 문학의 갈래가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문학적 개념화의 어려움은 국문학 연구자에게서도 이미 이른 시기에 제기된 바 있다.
雜歌는 이를 詩歌의 유형적 명칭이라 할 수 없다. 여기 雜歌라 하는 것은 俗歌라 불러도 좋은 만큼 어떤 典刑的 詩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보통 歌曲에서 사용되는 그 歌詞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遊山歌, 二八靑春歌, 赤壁歌라든지 하는 一群의 歌詞와 또 난봉가, 寧邊歌, 興打令, 等類의 歌詞를 여기 雜歌라고 부르고자 하는데, 사실상 이런 것들은 그가 부르는 곡조가 위주고 그 歌詞는 오직 그 곡조에 의거하여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중 략>
김천택, 김수장 이후 시조문학은 창작이 보이지 않다가 조선 말엽 흥선대원군시대에서 박효관, 안민영에 와서 나타난다고 하였다.
조윤제는 반성시대에 와서 작자가 과거의 한학자등 귀족계급이었으나 이 시대에 한학자등이 총퇴각하고 평민 계급으로 바뀌면서 또한 시조가 한문학의 餘技에서 벗어나 문학으로 당당하게 독립하였다고 한다.
김준영은 이조 후반기 문학에서 시기분류를 선조말기로부터 영조대까지와 영조대 이후의 시조 문학으로 분류하였는데 숙종 - 영조 대에 시조의 융성이 최고봉에 이르렀고 영조이후에는 약간 쇠퇴한 느낌을 받는다고 하였으며 전기에는 이세춘, 김천택, 김수장 등 작가가이면서 창곡가가 많이 나왔으며 <청구영언>, <해동가요> 등 시조집의 편찬, 사설시조(辭說時調, 長型時調)의 성행 등을 특징으로 들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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