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자료) 도산 안창호와 춘원 이광수의 비교
- 최초 등록일
- 2012.12.08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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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산 안창호와 춘원 이광수의 견해 차이를 바탕으로 만든 보고서입니다^^.
도산 안창호와 춘원 이광수의 관계,
그리고 안창호의 `정치적 민족주의`와 이광수의 `문화적 민족주의`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A+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 도산 안창호와 춘원 이광수의 관계
안창호는 조선 민족의 질을 높이고 힘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공립협회, 신민회, 청년학우회, 대한인국민총회와 같은 단체를 조직하고 정진학교, 대성학교, 태극서관 등의 교육기관 등을 설립하여 민족 계몽에 이바지하였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은 안창호의 길림 도착 소식을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청년과 학생들은 그가 묵고 있는 삼풍여관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안창호에게 길림성 교포 학생들을 위해 강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안창호의 길림 강연은 이렇게 해서 성사된 것이었다.
청년과 학생들은 안창호의 강연 소식을 알리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녔다. 그들은 길림의 주요 거리인 차루가, 통천가, 하남가, 북대가, 우마항가 등의 곳곳에 벽보를 붙여다. 벽보를 본 길림의 교포들은 마음이 들떴다.
<중 략>
2. 춘원 이광수의 ‘문화적 민족주의’
이광수의 문화적 민족주의에서는 개인, 민족, 국가의 분리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우선 이광수의 문화적 민족주의에서 정치적 자치권을 대표하는 국가의 중요성이 부인되는 것은 아니지만,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함에 있어 문화적 접근을 택함으로써 민족과 국가의 분리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문화적 접근은 민족의 정체성 유지가 정치적 자율권 없이도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묵시적으로 가정한다. 또한 문화적 접근에서 강조되는 개인의 계몽은 다시 개인과 민족의 분리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광수의 문화적 민족주의에 나타나는 정치와 문화의 분리는 민족독립의 문제를 정치적 의미에서 파악하고 민족후진성의 극복을 위해 비정치적인 계몽주의 입장을 채택하며 정치적 독립보다는 문화적 독리브로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춘원사상에 나타난 문화와 정치의 분리는 국가와 민족의 분리를 가능하게 한다. 즉 정치를 국가의 주권으로 이해하고, 민족의 핵심을 문화로 이해하게 되면 국가와 민족은 분리될 수 있다. 국가를 통한 정치적 주권이 배제된 상태 하에서도 민족 문화의 개조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개인의 정체성 유지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참고 자료
박성태, 「이광수 민족주의 체계와 배경 : 논문과 비평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2011
장동진, 「일본 식민통치시대 한국 자유주의: 식민지에서의 개인, 사회, 민족의 관념과 자유주의 : 안창호의 정치적 민족주의와 이광수의 문화적 민족주의」,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