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문명의 가뭄 환경문명사 가뭄 환경문제
- 최초 등록일
- 2012.08.11
- 최종 저작일
- 2012.04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마야문명의 멸망원인에대해서 다루었습니다.
가뭄에 따른 물부족문제에 대해서 썼습니다.
고려대학교 핵심교양 강의중 A+맞은 보고서입니다.
행여나 마야 문명에 대해서 보고서를 쓰시게 된다면 참고하시면 좋을것입니다.
목차
1. 마야 문명의 가뭄
2. 원인
3. 과정
4. 기원전 475 ~ 기원전 250년
5. 기원전 125 ~ 210년
6. 550 ~ 750년
7. 750 ~ 1025년
8. 1025년 이후
9. 대책
10. 유목화전
11. 농토의 확장, 농경의 발전
12. 저수지 건설
13. 피라미드형 관개시설 건설
14. 엘미라도르의 피라미드형 관개시설
15. 칼락, 코판의 피라미드형 관개시설
16. 티칼의 피라미드형 관개시설
17. 촌락의 분산
본문내용
●마야 문명의 가뭄
마야문명은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마야인들은 오늘날 멕시코 남쪽과 중앙아메리카에 살았다. 도시들과 마을들은 정글과 평원들에서 발생했으며 우상, 예술, 학문의 큰 중심지였다. 그들의 업적은 경이롭다. 그들만의 문자 체계를 만들어서 천문학과 수학에 정통했다. 9세기 마야 문명은 매우 번창했다. 하지만 전성기로부터 100년이 채 못되어 마야 문명은 거의 멸망했다. 이 문제의 원인으로 다수의 역사가들이 ‘가뭄’을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원인
마야지역의 연간 강우량은 1350~2000mm였다. 양이 충분하지 않고 예측도 불가능하였다. 보통 건기가 4~6개월 동안 지속된 뒤 5~10월에 1년 동안 내릴 비가 대부분 내렸다. 호수, 샘, 하천은 거의 없었다. 몇 해 동안 가뭄과 흉년이 들었다가도 폭우가 내리고 토양이 침식되는가 하면, 예기치 않은 폭풍이 몰아쳐 농사를 망치기도 했다.
물의 원천은 오로지 하늘에서 내리는 비였다. 강이나 지하수 등 어느 정도 안정적인 물 공급원을 가진 사회와 달리 마야는 인공적인 시설은 훌륭했으나 단기적인 기후변동에 매우 취약했다. 지역의 기후는 걷잡을 수 없었다.
<중 략>
◇티칼의 피라미드형 관개시설
마야 도시들 가운데 가장 큰 티칼에는 1세기에 가장 큰 피라미드가 세워졌다. 티칼에 모인 물의 양은 엄청났다. 도시 주변의 큰 언덕에 모두 6개의 집수장이 있었다. 중앙의 집수장 한 곳만 해도 면적이 63헥타르에 달했다. 강우량이 1500mm였던 해에 90만m3의 물을 저장할 수 있었다. 약간 경사진 포장도로와 방향 전환용 둑을 이용해 빗물을 돌과 진흙으로 막은 중앙 저수지로 흘려보내는 방식이었다. 저수지들은 전부합치면 물 저장량은 10~20만m3에 달했으므로 건기에 도시 둑길 아래에 설치된 수문을 통해 제한적으로 물을 공급하기에 충분했다. 꼭대기 바로 아래 주택들에는 작은 가정용 수조가 있었다. 아마 중앙 저수지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시설일 것이다. 중앙 언덕의 발치와 티칼의 늪지 가장자리에는 4개의 대형 저수지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거주 지역에서 한번 사용한 물을 재활용하는 용도였다. 연중 내내 물이 공급된다면 현지 농부들은 한 해에 두 차례 수확이 가능했을 것이다. 피라미드형 관개시설 덕분이였다.
참고 자료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남경태 옮김
뜨거운 지구, 역사를 뒤흔들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남경태 옮김
다음 블로그 ‘책을 벗삼아’ http://blog.daum.net/santaclausly/11793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