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파와_교황파의_대립
- 최초 등록일
- 2012.05.25
- 최종 저작일
-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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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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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영화 ‘장미의 이름’
Ⅱ. 역사 속 황제파와 교황파의 대립 1. 대립 갈등의 배경 → 서임권 투쟁 2. 카노사의 굴욕 3. 보름스협약 4. 아비뇽 유수
Ⅲ. <장미의 이름> 속 대립과 갈등 1.‘희극론’에 대한 갈등 2.‘청빈 논쟁’에 대한 갈등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교권과 왕권의 대립에서 교권이 강하였던 시기의 사건으로,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 7세에게 굴복하여 사면을 받은 사건(1077년)을 말한다. 1075년에 교황 그레고리 7세는 세속 군주에 의한 성직자의 서임을 금지함으로써 성직 매매 등 당시 교회에 만연한 부패한 관행을 개혁하고자 하였다. 이에 대하여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하인리히 4세는 그레고리가 교황으로 선출된 것을 무효라 선언하였고, 이에 교황은 하인리히를 파문하였다. 황제의 집권 정책에 불만을 품던 독일 제후는 1076년 왕이 교황으로부터 파문 당하자 이를 계기로 왕의 폐위를 결의하였다. 왕은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이듬해 1월 북이탈리아 아페닌산의 카노사 성으로 교황을 찾아가 눈 속에서 3일 동안 성문 앞에 서서 용서를 빌어 겨우 파문을 면제받았다. 이는 제국의 황제 교황주의가 로마의 지상권(至上權) 앞에 굴복, 왕과 제후의 다툼에 교황이 중재자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황제권의 패배를 나타낸다.
3. 보름스협약
1122년 독일의 서임권(敍任權)투쟁을 종결시키기 위해서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 5세와 로마교황 갈리스도 2세(재위 1119~24)와의 사이에 체결된 정교조약으로 그 내용은 순전히 타협적이다. 성직자(聖職者)는 교회법의 규정에 따라서 선거되며, 황제는 정치적 권리의 수여만을 행사한다. 성직자의 세속적인 지위와 종교적 측면을 엄격히 구분하여, 주교·대수도원장직은 성직자가 뽑도록 하나, 후보가 여러 명일 때는 황제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성직에 뽑힌 자는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한 봉신으로서 권력·특권 등을 받았다. 그때까지 황제의 서임권은 형식상으로 많은 제한을 받았으나, 사실상의 권한은 상당히 유보되었다. 또 부르군트 왕국과 이탈리아에서는 독일과 다른 방식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이 협약은 교황과 황제 쌍방을 만족시키지 못하였고, 문제의 궁극적 해결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협약으로 황제의 신성정치적(神聖政治的) 성격은 상실되고, 그 권력은 많이 약화되었다.
참고 자료
생각의 역사1 –불에서 프로이트까지 저자 피터 왓슨
중세교회사 저자 유스토 L 곤잘레스
중세 교회사 저자 윌리암 R 캐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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