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16세기는 정치적으로 중소지주출신의 사림이 성장하여 기존 훈구세력과 대립, 갈등하던 시기로 사림들의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시기이며 향촌 지배질서도 임란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던 시기였다. 경제적으로는 과전법의 붕괴와 함께 양반 지주층이 상속이나 매득, 개간들을 통해 농장을 확대해 나갔으며 사회적으로는 주자학적 가부장제 의식이 널리 보급되었고 유교적 윤리관이 기층사회까지 침투하여 부계친 중심의 문벌의식이 대두하던 시기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유교적 관념에 투철한 16세기 양반들도 점차 경제생활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아직은 양반의 ‘체면’ 상 나서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는 없었지만, 양반들은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나름의 교환경제 체제에 편입해 간다. 그러한 과정과 일상들이 16~17세기를 살았던 양반들의 일기 속에 세세하게 남아있다. 이 속에서 그들의 경제 생활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목차
< 목 차 >
Ⅰ. 머 리 말
Ⅱ. 일기로 보는 양반의 경제생활
1. 이문건 - 『묵재일기』
2. 유희춘 - 『미암일기』
3. 오희문 - 『쇄미록』
Ⅲ. 조선시대 양반의 경제 생활
본문내용
Ⅰ. 머 리 말
16세기는 정치적으로 중소지주출신의 사림이 성장하여 기존 훈구세력과 대립, 갈등하던 시기로 사림들의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시기이며 향촌 지배질서도 임란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던 시기였다. 경제적으로는 과전법의 붕괴와 함께 양반 지주층이 상속이나 매득, 개간들을 통해 농장을 확대해 나갔으며 사회적으로는 주자학적 가부장제 의식이 널리 보급되었고 유교적 윤리관이 기층사회까지 침투하여 부계친 중심의 문벌의식이 대두하던 시기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유교적 관념에 투철한 16세기 양반들도 점차 경제생활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아직은 양반의 ‘체면’ 상 나서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는 없었지만, 양반들은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나름의 교환경제 체제에 편입해 간다. 그러한 과정과 일상들이 16~17세기를 살았던 양반들의 일기 속에 세세하게 남아있다. 이 속에서 그들의 경제 생활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일기로 보는 양반의 경제생활
1. 이문건 - 『묵재일기』
『묵재일기(齋日記)는 묵재 이문건이 1535년부터 1567년까지 32년에 걸쳐 기술한 생활 일기이다. 이문건은 1494년 이윤탁의 3男으로 태어났고, 字는 子發, 호는 齋休이다.이문건은 1528년(중종 23) 별시 문과에 합격한 이후 사간원 정언, 사헌부 장령, 실록청 편수관, 우통례, 승문원 판교, 빈전도감 낭관, 동부승지 등 중앙 관직을 두루 역임한 시대의 유력자였다. 그러나 1545년 조카 이휘가 처형되면서 가문의 정치적 부침이 시작되었고, 이문건 역시 자신의 정치적 의지와는 무관하게 중앙관료로서의 생활을 종료하게 되었다. 1545년 이후 이문건은 20여년 이상을 성주 유배지에서 생활하였는데, 특히 묵재일기에서는이 성주에서의 유배생활에 대한 기록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문건의 경제생활을 유배이전과 유배이후의 생활로 비교해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및 참고자료]
1. 이정수, 「16세기 중반~18세기 초의 貨幣流通 실태」, 朝鮮時代史學報, 32, 2005.
2. 배현숙, 「선조초(宣祖初)교서관활동(校書館活動)과 서적유통고(書籍流通考)」, 서지학연구, Vol.18, No.1, 1999.
3. 정성미,「『쇄미록』연구」, 원광대학교, 2003.
4. 송재용, 「『眉巖日記』硏究」, 檀國大學校 大學院, 1996.
5. 김소은, 「이문건가의 경제 운영과 지출 -괴산입향을 관련하여-」, 한국고문서학회,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