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 명나라 효종 홍치제
- 최초 등록일
- 2011.04.26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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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명나라 효종 홍치제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 생애(생몰 1470~1505, 재위 1487~1505)
■ 원만했던 홍치제의 가정사(家庭事), 하지만 파멸을 낳다.
■ 홍치제 아들을 걱정하며 죽다.
■ 홍치제 시기 연표
■ 참고 자료
본문내용
■ 생애(생몰 1470~1505, 재위 1487~1505)
효종 홍치제는 명나라 제9대 황제이며, 성은 주(朱), 휘(諱)는 우탱(祐樘)이다. 헌종 성화제의 셋째 아들로 1470년(성화 6) 7월 30일 태어났다. 홍치제의 생모 기씨(紀氏)는 요족(瑤族) 중국 광동(廣東)·광서(廣西)·운남(雲南) 등의 산지 및 베트남·타이 북부 산지에 널리 분포하는 소수 민족이다.
출신으로 성화제가 요족의 반란을 토벌했을 때 포로로 잡혀 후궁(後宮)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성화제의 승은을 입어 홍치제를 출산했지만, 성화제의 총애를 받던 만귀비의 질투로 독살되었다. 만귀비는 질투심이 강하여 그녀 이외에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갖은 수를 동원하여 죽였기 때문에 홍치제는 환관이 몰래 양육을 하였다. 폐후 오씨가 양육했다는 설, 성화제의 모친 주태후가 홍치제를 어린 시절 양육했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6세 때야 비로소 부친을 대면할 수 있었으며, 이복형이 요절(夭折)한 관계로 황태자로 책봉될 수 있었다. 그러나 황태자 되어서도 늘 만귀비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힘들게 생활해야 했다. 흉악한 만귀비의 위협으로 인해 극적인 유년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홍치제는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것은 홍치제의 영민한 성품이기도 하지만 교육의 힘이기도 했다.
명나라의 황제 수업은 강학(講學)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홍치제는 황제로 즉위할 때까지 착실하게 황제 수업을 받았는데, 이러한 장기간의 황제 수업은 그가 명나라 후반의 준비되지 않은 황제들과는 다르게 관용과 인내심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중 략>
■ 홍치제 아들을 걱정하며 죽다.
1505년(홍치 18년) 5월 홍치제는 감기 몸살에 시달렸다. 어의가 가져온 약을 먹고 코피를 쏟으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당시 황태자 주후조의 나이는 15살이었는데 워낙 여자와 노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고, 성격이 황당하고 제멋대로여서 홍치제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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