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관계와 서경파의 대두
- 최초 등록일
- 2011.01.05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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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사 수업에서 고려사 묘청열전을 읽고 쓴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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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자겸의 난으로 국내가 혼란했던 고려 인종 연간에 동아시아의 정세 역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전까지 고려를 부모의 국가로 모셔왔으며, 1107년에 고려가 동북9성 정벌을 통해 무력으로 제압하기도 했던 여진족이 아골타의 지휘 아래 급성장하면서 1115년 금나라를 건국했으며, 그로부터 10년 뒤 송나라와 함께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송나라까지 강남으로 몰아내고 화북을 정벌하는 데 이르렀다. 금나라는 대외적으로 팽창하면서 고려에 사신을 보내 형제 관계를 요구했으며, 화북 지방을 점령한 후에는 군신 관계까지 요구했다. 당시 지배자인 이자겸은 금과의 마찰을 두려워하여 금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불과 전 왕대인 예종 때까지만 해도 고려를 모시던 여진족을 ‘군신 관계’로 모시게 된 굴욕적인 상황이었다.
금나라와의 군신 관계를 인정하면서 자존심이 상한 고려에서 대두한 것이 묘청과 서경파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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