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김운용 그는 누구인가?
- 최초 등록일
- 2010.12.05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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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태권도 김운용의 학력과 경력 등을 들으며 자세한 설명
목차
학력
경력
수상경력
김운용의 예전 모습
태권도와 김운용
본문내용
천운(天運)이 따라야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황색인종으로서 대권에 도전한 김운용 회장에게 천운은 비켜갔다. 세계 모든 태권도 인들은 그의 당선을 가슴 조이며 염원했던 것은 사실이다. 표 대결이란 언제나 그렇듯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는 교훈을 실감케 했다. 7월 16일 제8대 IOC위원장 선거가 있는 모스크바 제112차 총회에 태권도인의 시선이 집중됐다. 국내외 매스컴에 의한 김운용 후보의 만만치 않은 인기에 흐뭇해 한 모든 태권도 인들은 내심 기대가 대단했다. 1차 투표에 이어 2차 투표의 결과는 23-59표로 벨기에의 자크로게에게 패했다. 우리는 그날의 비통한 장면을 잊을 수 없을 거다. 국내 TV에 비친 우리의 태권도 지도자가 보여준 `비례(非禮)`한 모습을! 그러나 그는 다시 재기하고 있다.
한국의 스포츠발전을 위해, 국제무대에서 한국스포츠의 위상을 위해, IOC위원과 GAISF회장으로서 그가 해야 할 일들이 많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지도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국 스포츠 발전 위해 더욱 매진"이라는 서한을 김운용 총재 IOC 선거 낙선 후 김 대통령에게 보내다. 그 글 가운데 우리의 주목을 끌게 하기에 충분한 대목을 여기에 옮겨 보자. "남북한 체육 교류도 그 어느 때보다 협조체제나 분위기가 무르익었으며, 많은 종목을 통하여 전반적인 교류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 동안 태권도의 세계화와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등으로 내부조직 관리에 신경 쓸 겨를이 적었으나, 태권도의 국내의 조직정비 및 제도개선 그리고 후진 양성을 도모하여 국제사회 속에서 태권도의 자리 매김에 더욱 힘쓸 것입니다."
★ 그는 태권도를 한국의 전통 스포츠로 굳히고 태권도 사범의 해외진출을 꾀하면서 태권도의 국제화에 노력했다.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에 취임 후 이듬해인 1972년 11월 30일 서울 역삼동에 국기원을 지어 태권도의 총본산으로 삼았고, 3분 3회전 및 체급제의 경기방식을 확립, 태권도를 경기종목으로 자리 잡게 했다.
세계태권도대회를 개최하여 1973년 5월 국기원에서 제1회 대회를 열었고, 세계태권도연맹을 만들어 1980년 IOC의 승인종목으로 인정받도록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