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DICI를 읽고 (메디치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10.11.10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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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 레포트는 서양의 역사와 문화라는 과목을 위해 쓰여졌던 자료입니다.
최초의 부르주아인 메디치가에 관한 일대기가 쓰여있습니다.
일대기별로 정리가 되어 있어서 골라서 읽기에도 편하실 겁니다.
오직 수작업으로 작업한 것으로 읽는데만 2주가 걸렷습니다.
목차
the medici
-대공위시대(1494~1512)
-줄리아노(네무르의 공작)와 로렌초(1512~1519)
-교황 하드리아누스의 스무 달 재위 (1521~1523)
-줄리오 (클레멘스 7세)의 재위 (1523~1534)
-카트린 데 메디치 (1517~1589)
본문내용
-카트린 데 메디치(1519-1589)
카트린이 여왕이 되고 나서도 12년 간의 아무런 힘들 발휘할 수 없었다. 왕인 앙리가 죽고 나서 그들의 세 아들이 차례로 왕이 되면서 그들의 섭정여왕으로써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카트린이 섭정여왕으로 프랑스를 다스리던 시기는 종교분쟁의 클라이막스였다.
카트린에게는 불행하게도 카트린의 모든 업적을 불가능하게 만든 대대적인 운동이 온 유럽을 휩쓸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독일을 갈가리 찢어놓았던 대규모 종교 분쟁이 프랑스로 번져 들어오고 있었다. 제네바와 로마가 그 나라를 전장으로 만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미 앙리 2세의 재위 후반에 (그는 새 종교의 철저한 반대자였던 디안 드 프왁티에의 영향을 받았다) 종교로 인한 잔혹한 박해와 처형이 자행되었다. 카트린이 섭정 여왕이 될 무렵에는 두 적대 세력이 서로 대치해 있었다. 그리고는 곧 종교 전쟁이 일어나 프랑스 전역을 휩쓸면서 그 나라를 분열시키고, 도시들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광분케 했다. 종교적 증오감에 실린 힘이 수많은 고귀한 생명을 희생시킴으로서 다 소진 될 때까지는 아무리 지혜로운 중재자가 나선들 항구적인 평화란 얻을 수 없었다. 이 전쟁은 카트린의 둘째와 셋째 아들의 재위 기간 내내 계속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5년이나 더 지속되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의 여파가 그 나라의 역사에서 가장 심하게 몰아친 바로 그 시기에 프랑스를 다스리게 되었다는 것은 카트린으로서는 큰 불운이었다.
프랑스는 프로테스탄트진영과 로마 카톨릭 진영간의 격렬한 투쟁으로 찢겼다. 이들은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고 전쟁을 벌였으며, 왕권을 서로가 장악하려고 애섰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심지어 무력도 불사하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카트린은 어느 쪽도 편들지 않고 양 진영에 대해 서로 관용하는 법을 배우라고 촉구하고, 양 진영 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화해를 이끌어 내기 위한 단호한 정책을 취했다. 그녀는 모든 종교에 대한 평등한 관용 정책을 추구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