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의 상징성
- 최초 등록일
- 2010.10.09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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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월미도는 전통시대 내륙으로부터의 외침에 대처하고자 왕실의 피난처인 행궁을 세웠던 곳이었으며, 해양으로부터의 침략이 있었던 개항이전에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등을, 개항이후에는 외세의 군사적 교두보로 이용되면서 청일전쟁, 러일전쟁, 인천상륙작전 등을 경험했던 역사적 현장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역사적 현장이었던 월미도는 1904년 일제에 의해서 개발되기 시작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인천의 대표적인 위락단지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그 결과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이문화에 매료되어 월미도가 지닌 우리의 역사를 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월미도는 병인양요의 모든 상징성을 대변해 주는 우리나라 근대의 표상이다. 프랑스 극동함대가 조선에 출병하여 병인양요를 일으킨 결정적인 원인은 당시 북경 주재 프랑스 공사인 벨로네가 ‘조선왕이 우리의 불운한 국민에게 손을 댄 바로 그날이 조선국이 사라지는 장래의 날’이라고 오만하게 허풍을 떨면서 내린 자의적인 결정 때문이었다. 이 같은 명령을 받고 조선에 출병한 로제 제독은 같은 해 10월 13일 전함 7척을 월미도 해안에 정박한 다음 11월 11일 강화도에서 퇴각하기 까지 1개월 동안에 강화도 전역에서 방화와 살상 그리고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인 외규장각 장서 1천여 점을 약탈해 갔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 로제제독은 월미도를 자신의 이름을 따서 ‘로제섬(Roze Island)`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한국근대사에 있어서 서양세력과의 첫 대결이었던 병인양요는 프랑스에게 굴욕적인 종말을, 조선에게는 영광의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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