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추피추는 제3의 종교지역이었다.
- 최초 등록일
- 2010.08.13
- 최종 저작일
-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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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잉카제국의 생활터로 추정되는 맞추피추에 대한 논문형식의 레포트이다. 여러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당시는 주종교가 절대적인 시대였는데 맞추피추는 제3의 종교지역이었다는 결론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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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잉카제국의 흔적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맞추피추. 정확한 건설연대는 추측들만 무성할 뿐이고, 이곳에 살던 사람은 물론, 이곳이 잉카의 수도인지는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잉카 연대기쯤에 지어진 도시이고, 또 지어진 방식 또한 유사하다. 그 도시는 잉카시대에 절대종교였던 태양의 신인 비라코차, 대지모신인 파차마마나, 수신(水神)인 마마고차가 아닌 제 3종교를 믿던 주교들에 은신처이자 삶의 터전 이였다. 그것은 맞추피추가 지어진 곳이 산과 절벽이라는 것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밀림에 가려 밑에선 전혀 볼 수 없고 오직 공중에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세상과의 단절을 시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그 당시엔 절대 종교만이 존재했다. 그것을 어길 시엔 그들의 종교 신들에 노여움을 풀고 합리화 시키려는 인신공양과 같은 처벌을 가했을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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