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서간문의 변화(척독)
- 최초 등록일
- 2010.05.09
- 최종 저작일
-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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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조선시대 서간문의 대두와 변화양상을 위한 과정
2. 조선후기 서간문의 변화(형식, 내용)
3. 척독의 등장과 척독의 의의
본문내용
조선시대 소품 론의 대두와 더불어 서간문 역시 발달했다. 서간문이란 소식을 서로 알리거나 용건을 적어 보내는 글로써, 즉 현재의 편지에 해당한다. 하지만 익히 알고 있듯이 편지는 지극히 사적이고 비형식적인 글로써, 고문 풍과 형식을 중시했던 조선사회에서는 크게 발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선후기 특히, 18,19세기에는 산문의 영역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변화의 중심에 소품 론이 있었다. 조선시대 소품 론은 그 당시 古文의 위상이 너무 강하였기 때문에 다소 미미하게 남아있지만, 조선후기 산문에서 서간문을 포함한 소품문의 존재의의를 결코 소홀하게 다룰 수는 없다.
소품문은 16세기 말엽에 수용되어, 허균과 같은 여러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조선중기와 후기 문단에 광범위한 영향을 파급시켰다. 조선시대 소품문은 이전의 주자학적 사유체계에 기본을 둔 문학과는 현저하게 다른 세계와 의식을 반영한 문학이었다. 급작스러운 문풍의 변화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 번째는 지배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사대부 작가의 증가로 작가 층의 변화를 들 수 있고, 두 번째는 신분의 벽이 이완됨으로써 在地士族 신분이 주축을 이루어 작가를 배출하던 여건에서 벗어나 서울과 그 주변지역에 살며 창작에 참여하는 문인 층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유적인 측면으로는 주자학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에서 벗어나 인간성의 본래적 측면에 관심을 두고, 개성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유관이이 성행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이러한 몇몇 특징은 새로운 문학적 장르인 소품 론의 대두로 이어졌고, 이러한 요인에 따라 18,9세기의 소품문은 기존의 글쓰기 방식을 탈피하고, 나아가서는 그것을 해체하는 수준으로까지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