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제 3세계와 다극화에 대한 심층분석
- 최초 등록일
- 2010.01.13
- 최종 저작일
- 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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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계사]제 3세계와 다극화
목차
1. 들어가기
2. 제 3세계와 다극화
-제3세계의 형성- 반둥 회의와 그 의미
[사료]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의 반둥 회의 폐막 연설(1955.4.22)
TIP. 반둥 회의와 이집트의 만남, 그리고 그로 인한 연쇄 반응들
-공산주의자에게 1956년의 의미
-1956년 소련 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헝가리 혁명
[사료] 헝가리 봉기와 관련된 라디오 방송
-중국과 소련의 관계 악화
-중국의 문화 혁명
TIP. 작가 라오서와 문화혁명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전쟁’: 베트남 전쟁
-꼼짝달싹 못하는 미국의 거인
1) 베트남 전쟁의 성격
[사료] 드골이 케네디에게 한 충고
[사료] 1968년에 미국 국방장관이 된 Clark Clifford의 글
2) 한국과 베트남 전쟁
3) 베트남 사람들의 기억
4) 한국 군인의 기억
-저항의 시대 1960년대
-1968년의 혁명
TIP. 1968년 5월 프랑스 대학교의 대자보나 벽에 쓰여 있던 구호들
프라하의 봄과 좌절
3.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기
시간이 가면서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의도대로 움직이지는 않게 되었다. 저우언라이와 네루의 만남에서 탄생한 평화 5원칙은 반둥 회의에서 평화 10원칙으로 거듭났고, 이에 아시아․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이른바 제3세계를 형성했으며, 반식민주의가 국제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당연히 미국과 소련은 표면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헐뜯고 비난했지만,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존재가 꼭 필요했다. 두 세력은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1960년대 이후 서로 체제를 유지하는 선에서 ‘동반자’가 되어 갔다. 그러나 이들의 체제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소련에서는 스탈린의 사망 이후 흐루시초프가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를 문제 삼았고, 평화 공존 원칙을 제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소련의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고, 소련에서 자립한 중국은 내부적으로 대약진 운동과 문화 혁명을 전개하였다. 소련에서 이미 드러나기 시작한 균열은 동구권 여러 나라들로 번져나가 소련에 대항하는 나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를 대표하는 헝가리 혁명을 소련은 무참히 짓밟았으며, 그로부터 12년 후에 일어난 프라하의 봄도 철저히 짓밟았다. 이러한 소련의 행동은 소련이 이미 사회주의적인 원칙에서 멀어졌으며,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미국 역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어 패권 국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세계적으로 많은 비판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가 미국권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미․소를 제외한 영국, 프랑스, 중국 등도 핵을 보유하기 시작했으며, 서독과 일본의 경제는 급성장했다. 변화한 세계에서 더 이상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닉슨 독트린을 시작으로 세계는 이제 ‘데탕트’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소련, 일본과 중국, 소련과 서독이 교류하기 시작했다.
참고 자료
김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