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문학사에서 계모형 <장화홍련전>의 평가
- 최초 등록일
- 2010.01.08
- 최종 저작일
- 2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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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과제물 중 하나로 북한문학사에서 대표적인 계모형 형태 소설인 장화홍련전을 문헌자료 수집 및 분석을 통하여 평가하였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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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역사과정에서 계모와 전처 자녀의 관계는 한결같지 않았다. 현재의 ‘전통적’ 계모관은 조선후기에 발생하여 굳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고려~조선전기에는 처가거주관행과 혈연에 집중된 친족의식으로 말미암아 전처자녀와 계모가 함께 살 확률보다 전부(前夫) 자녀가 계부와 함께 살 확률이 높았다. 또한 여성은 자신의 혈족을 적극 보살폈으며 남편 측 혈족에 대한 의무감은 자신의 혈족에 미치지 못하였다.
본격적으로 <장화홍련전>에 대하여 알아보자면 <장화홍련전>은 처음에 한문으로 쓰여 졌던 것을 후에 국문으로 고쳐 쓰고 윤색한 구전문학적 성격을 가진 소설이다. 17-18세기 사이에 쓰여 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문본에 비해 국문본은 18세기 중엽, 말엽에 쓰여진 것으로 보여 지며, 그 주체나 사상적인 면에서 두 본은 차이를 보인다고 형가를 하고 있다. 한문본은 <장화홍련전>은 인민들 속에 돌아다니는 설화를 바탕으로 철산부사의 덕망을 찬양하는 중심이라면, 국문본은 가부장적 봉건 가족 제도와 사람의 물욕이 인간을 얼마나 불구화 하는가 비판하고 양반들의 무능함을 비판하면서 장화와 홍련의 비극에 동정을 표시하는데 주된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보는데, 국문본으로 윤색되면서 인민들의 사상적 지향이 좀 더 뚜렷이 반영되었다고 보았다.
<장화홍련전>은 그 작자와 창작 연대가 정확히 전해지지 않으나 현전 문헌에 의하면 먼저 17세기말 혹은 18세기 중엽에 朴慶壽에 의해 한문본으로서 씌어진 일이 있다. 이 한문본은 <장화홍련전>의 이름으로 17세기 사람인 全東屹의 佳齊潗에 수록되어 있는 바, 그 구성면으로 보나 인물의 성격 창조의 면에서 보나, 지금 읽히고 있는 국문본에 비해 미숙한 단계에 있다. 국한문본으로 金日求가 지은 光國將軍全東屹實記중 일부에 <장화홍련전>의 내용이 전하며, 국문본은 그 언어, 표현 수법 등으로 미루어 봐서 대체로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에 이르는 기간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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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 말
북한의 가정소설로서 가정 윤리적인 문제를 취급하면서 봉건 가정 안에서의 비극을 보여준 당시의 작품들 중에서 비극의 사회 경제적 측면을 제대로 밝혀낸 것으로 <장화홍련전>만한 것이 없다고 평가한다. 이는 18-19세기 자본주의의 발생·발전 과정에서 양반들의 물질에 대한 욕심의 증대와 함께 동시에 경제적 관계가 인간의 사회생활·도덕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사람들이 점차 냉철하게 고찰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도 봉건적 윤리와 제도를 철저히 극복하지 못하는 제한성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하는데, 이는 앞에서 장화 홍련의 성격 자체가 봉건적 도덕관념을 극복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자신들의 비극적 운명과 봉건 제도를 철저히 극복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과 함께, 마지막의 사건 해결 과정에서 철산부사의 의협심에 의해서 사건이 해결되는 것 또한 봉건 사회의 모순을 관료의 힘을 빌어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도 작가의 사상적 제한성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장화홍련전은 양반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모순을 사회 경제적 관계와 연결시키면서 생동한 예술적 형상을 창조하고 이야기를 처음부터 갈등 속에 흥미 있게 전개해 나감으로써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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