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분석]부산 임진왜란 유적지 다대포 진성과 윤공단, 좌수영성지, 응봉봉수대, 황령산봉수대를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9.12.07
- 최종 저작일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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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진왜란 분석]부산 임진왜란 유적지 다대포 진성과 윤공단, 좌수영성지, 응봉봉수대, 황령산봉수대를 다녀와서
완전 A+ 보장 레포트입니다.
목차
1. 다대포진성
2. 윤공단
3. 응봉봉수대
4. 황령산봉수대
본문내용
1. 다 대 포 전 투
다대포 전투는 앞서 조사한 부산진 전투와 동래성 전투와 비교하면 남아있는 기록이 매우 부족했다. 그러므로 자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역사서에는 다대포를 지키던 윤흥신 장군이 왜군의 첫 공격을 물리쳤으나 왜군이 전열을 재정비하여 다시 쳐들어왔을 때는 윤 장군 이하 모든 사람이 왜군에 대항하다가 전사했다고 언급하고 있고 시기적으로 보았을 때, 다대포 전투는 동래성 전투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어쨌든 윤흥신 장군이 왜군의 첫 공격을 물리친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임진왜란에서 최초로 승전을 거둔 조선군 장수는 바로 윤흥신 장군으로 볼 수 있겠다.
(1) 다대포진성
성곽이라 추정되는 모습
다대포진성의 경우 임진왜란 당시 다대포전투가 벌어져 첫 승전을 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한 위치가 나오지 않았는데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가 다대포진성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그전에는 다대초등학교 근처였지 않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위치가 대충 맞는 것 같다.
성곽이라 생각되는 것이 구.다대초등학교 후문의 담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성곽에 사용 중인 성 돌의 크기는 사진상으로 봐서 50센티 이상 되어 보였다.
다대포진성에 사용한 성곽의 축성방식을 보면 조선 초기 성곽의 축성방식으로 보이는데, 성곽은 잔돌 끼움 방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상부인지 하부인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상부에 큰 돌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지났음을 알 수 있는 모습도 보였는데 처음 축성 시의 성곽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대포진성의 경우에는 정말 힘든 답사였다. 남아 있는 유적도 거의 없었고 이것이 성의 일부였는지 애매해서 쉽게 답사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다대포진성에 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많은 유물, 유적이 나왔으면 하고 그때 다시 답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