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조선시대 관각의 발달과 관각 풍속의 정치적 의미
- 최초 등록일
- 2009.04.17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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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통 사회의 엘리트 집단 중 하나인 관각이 가졌던 문화행태를 우선 고구하여 이러한 점이 밝혀짐으로써 그들이 산출한 문학의 본질이 정확히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1. 고려 조선시대 관각의 발달과 관각 풍속의 정치적 의미에 대한 문제의 제기
2. 관각의 융성과 풍습
가. 신선 비유와 閣臣의 자부심
나. 문화 엘리트로서의 閣臣과 選任 관행
다. 연회와 新來侵虐, 위계질서의 확립
라. 直廬와 宣賜, 君臣의 상호 작용
3. 마무리
본문내용
1. 문제의 제기
고려 일대의 문풍을 지배한 사장학의 조류 아래서 관각의 문신들은 시문이라는 기예를 통해 특출한 지위를 향유하였으며 특히 문학을 옹호한 호문지주나 무신의 통치 시기에는 지배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배타적인 세력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외환이 잦았던 고려 일대에, 외교 문서의 작성 및 강대국 사신에 대한 접빈을 위해서는 문학 일반 특히 시에 대한 교양과 창작 능력이 필수적인 조건이었고, 이러한 기능을 갖춘 관각 문신들의 위상은 자연 높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애초 문화 엘리트로 출발한 그들은 자연스레 하나의 정치 엘리트 집단을 형성하였고, 권력의 속성상 자신들의 권력과 권위를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배타적이고 은밀한 문화 행태를 산출하였다. 그 문화 행태는 화려하고 지식 나열적이며 자기 과시적인 모습을 가진다. 자기 세계에서만 통하는 특수한 문화적 성과물들과 문물을 과시함으로써 신분적으로나 기능적으로 그 세계에 참여할 수 없는 집단들을 스스로 소외되게끔 만드는 것이다.
정치 행태상, 고려조나 혹은 관각에 관한 한 그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조선조가 보여준 문화 엘리트의 배타적 관습은 우리의 흥미를 끄는 바가 있다. 현대에도 문화 엘리트나 정치 엘리트의 이러한 배타성은 그대로 답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집단은 보다 은밀하고 고도의 상징성을 가진 행위 양식들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외부로부터의 저항에 대비하려는 속성을 가지게 된다. 그만큼 현재 향유하고 있는 기득권이 큰 까닭이다.
따라서 전통 사회의 엘리트 집단 중 하나인 관각이 가졌던 문화행태를 우선 고구하여 이러한 점이 밝혀짐으로써 그들이 산출한 문학의 본질이 정확히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2. 관각의 융성과 풍습
가. 신선 비유와 각신의 자부심
관각이 뚜렷한 정치 세력으로 등장하게 된 시기는 송대 들어서였다. 관각 문신들은 정치․문화 엘리트로서 강한 자긍심을 가졌던 집단이었다.
참고 자료
김성언, 문학과 정치, 동아대학교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