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사원은 모두 강화도 천도 후 최씨정권에 의해 세워져 당시 대몽항쟁기에 최씨정권 유지를 위해 항몽의식 고취를 선도했던 사원이다. ... 선원사-수선사로 이어지는 당시의 대표적인 사원은 최씨정권의 권력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 수선사 5세인 천영은 1248년(고종 35)에 최우에 의해 선사에 제수되고 단속사 주지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최씨정권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하지만 최씨정권은 몽고와의 강화와 최씨정권의 유지가 병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되자 항전책으로 선회하게 된다. ... 결국 최씨정권의 유지를 위한 정치적 목적에 의해 항전적 성향을 띄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최씨정권의 사병 노릇을 하던 삼별초의 항쟁의 성격은 어떨까. ... 최씨정권의 전쟁수행의 우선 목적이 정권의 유지에 있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강력했던 최씨정권도 최의가 살해됨으로써 끝이 났다. 60년의 최씨 무신정권이 마감된 것이다. ... 그뒤 최씨정권을 몰락시켰던 이들이 실질적인 힘을 가져 무신정권을 이어가긴 했지만 말이다. 고종실록을 읽으며 가장 아쉬웠던 점이, 고종에 대한 것이다. ... 나또한 고종이 보여준 조심스러운 처세보다는 최씨정권과 몽고군의 침입에 더 많은 관심이 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종에 대해 느낀점은 힘이 없는 왕권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최우가 자신의 두 아들 만종, 만전을 수선사 제2세 혜심의 문하에 출가시킨 것은 최씨정권과 수선사의 밀착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최씨정권은 전통적으로 왕실 및 문신귀족과 밀착된 교종세력을 억누르고 그 대신 자기를 지원해 줄 불교세력으로 선종을 택하였다. 특히 수선사 계통의 조계종을 지원하였다.
이규보가 여러 문사와 함께 최충헌의 저택에서 천엽유화(千葉榴花)를 부(賦)한 것이 최씨정권에 접근하게 된 최초의 계기였다고 하거니와 최충헌? ... 최이 부자 양대에 걸쳐, 그는 그의 문학으로 최씨정권에 마음껏 협조했다. 강화시대는 그의 문학적 활동에 있어서나 사환의 영달에 있어서 일생에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다. ... 이후 몽고가 금을 멸하고 일어났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집권을 한 최씨정권은 대몽항쟁을 바탕으로 전기 귀족의 정치 지배관계의 폐쇄성에 비하여 보다 넓은 지반을 확보할 수 있었고,
1231(고종18)-1259(고종 46): 몽고란-최씨정권의 항쟁 지지, 민중의 애국적 역량 조직. 상하 일치의 경험을 통해 진취적·민중적 문학 등장. ? ... 1170(의종24)-1258(고종45): 무신란 이후 무신정권기에 활기찬 문학활동에 대한 시각-현실도피에 의한 문학 탐닉(이규보 해당 안됨)/최씨정권의 문신 등용(이전 문학보다 미약하였을
칭송,고비를 잘 넘김 최충-지공거,해동공자(유학의 높은인-이규보 김극기 등 무신란이후 문벌귀족이 몰락하고 사회 지배체제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다가 몽고와의 항쟁을 통해 문인들은 최씨정권의 ... 등장 → 교훈적 문학을 강조 -경기체가에 대한 이황의 견해「도산십이곡」- 문인의 입에서 불려진 것이지만 너무 들떠 있으며 음란하기조차 한 기풍을 지닌 점이 불만이라고 함 - 그러나 최씨정권에
무신란 직후에는 고위 무신들의 합의기구로서 중방이 정치의 중심을 이루었지만, 최씨정권이 수립된 다음에는 강력한 최씨집정을 중심으로 하는 새 기구가 만들어졌다. ... 당초 경대승(慶大升)이 만들었던 도방(都房)이 최씨정권에 이르러 크게 확대되어 수천 명의 병력을 지니게 되었는데, 도방의 군인들은 최씨집정에 절대적 충성을 하는 사병으로서 사사로이
결과 ①사대부=성리학자의 성장 ②성리학의 수용과 분화 ③불교계의 변화 ④역사편찬 ⑤문학과 예술 ⑥과학기술과 금속활자 발명 3.결론 4.참고문헌 1.서론-13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정세 최씨정권이 ... (『고려사』권 23세가 고종 19년 7월 임오)는 기사는 이미 농민항쟁군이 개경에 가까운 경기지역에까지 출몰하였음을 말해주는 동시에 이에 크게 위기를 느낀 최씨정권이 민족적 모순을
즉, 이 시기의 민란은 단지 최씨정권에 대한 항쟁이 아니라 외적의 침입에 대항한 반민족적인 항쟁의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 최씨정권이 몰락한 뒤 국왕과 그의 측근들은 무인들로부터 권력을 되찾고 왕권을 공고히하기 위해 개경으로의 천도를 준비한다. ... 최씨정권은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몽고에 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전투 중지와 항복을 강요하였고, 급기야는 강화로의 천도를 결행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최씨정권이 수립되면서부터는 무신정권의 가혹한 탄압을 받아 교종교단은 급격히 쇠퇴하고, 의천 이후 침체해 있던 선종 세력이 최씨정권과 제휴함으로써 새로이 대두하였다. ... 이와 같이 최씨정권은 몽고의 침략과 일반민의 저항에 직면하여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정권의 유지에 급급하였다. ... 최씨정권의 최우 집권기에 나라 안에 도둑이 들끓자 용사를 모아 매일 밤에 순찰, 단속하게 하여 그 이름을 야별초라 하였으며, 도둑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야별초를 나누어 이를 잡게 하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