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절규한다. 산을 향해 순백의 눈덮인 호타루에서 오겡끼데스까? 와타시와 오겡끼데스 메아리로 답변이 돌아오지만 세 번을 목놓아 외친다. ... 왜 그렇게 가슴 아프게 절규했을까? 영화를 본 후 이 의문은 쉽게 풀렸다. 명대사로 손꼽히는 것이 있었다. “가슴이 아파 이 편지는 차마 보내지 못하겠어요.”
첫 번째 기도에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절규한다. 2022년은 월드컵 16강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 나는 마음속으로 예수님의 마지막 절규를 되뇌었다. 앞으로 2주일 후 2022년 9월 13일 학습지원센터가 개관할 터이다. 나는 전혀 이 분야와는 준비된 삶을 살지 못하였다.
이를 통해서 나타나는 결말은 마치 뭉크의 절규처럼 귀를 틀어막고 견디기 어려운 감정을 중얼거리는 ‘나’의 모습이 등장한다. 3. ... ‘나’의 이상향이었던 친구 P의 마지막 반전은 친구 P의 밤을 드러내고 북유럽의 해가 지지 않는 밤이라는 역설을 통해서 ‘나’가 밤이여, 나뉘어라 하고 절규하게 만든다.
그리고 엄마와 유독 갈등이 잦아지기도 했는데, 의견 차이로 다툴 때마다 나는 나를 실패자로 여기며 절규하여 비합리적 사고로 인한 폐해를 내비치기도 했다. ... 이를 보면, D 씨가 얼마나 깊이 절망하고 절규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자신이 도모하고자 하는 일이 제대로 실현안 될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비관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 있다.
그 절규에서 ‘얼마나 죽음이 두렵고 살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타할 수만은 없지만 이해한다 말하기도 어려운 엄마의 그 행동은 정말 가슴 아팠다. ... 자기 죽으면 남은 가족들 고생 시킬까봐, 같이 죽자고 말하며 나도 살고 싶다는 엄마의 절규가 정말 마음 아팠다. 늘 베풀기만 했던 엄마도 ‘인간’임을 보여주는 게 장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