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박창화가 창작했다고 보기 힘들다. ... 노태돈이 말하는 것과 같이 화랑세기가 박창화에 의하여 위작된 시기가 1930년대와 1940년대 전반이었다고 본다면 당시 일본에 있던 박창화가 위와 같은 언급을 한다는 것은 일본에서의 ... 이제껏 박창화가 창작한 글들은 확실히 역사적인 사실과 다른 면이 있었으나 화랑세기는 박창화가 썼다고 하기에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도 안 나와 있거나 틀린 부분을 잡아 주는 내용도 있기
바로 이 과정에서 박창화의 행보가 문제시 된다. 무명의 재야사학자에 불과했던 박창화에게 만약 필사본『화랑세기』와 같은 획기적인 사료? ... ) 박창화의 역사가로서의 자질 박창화가 저술한 다른 책들도 필사본『화랑세기』의 진위를 판별하는 논거정에서 저지른 오류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그리하여 지금부터는 필사본『화랑세기』를 진서(眞書), 즉 박창화가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필사한 것으로 보는 입장과 위서(僞書), 다시 말해 그것을 박창화의 개인 창작물로 보는 각각의
결론 Korean History 화랑세기의 진위여부 – 사용된 용어, 그리고 필사자 박창화박창화는 누구인가? ... 화랑세기의 진위여부 - 화랑의 image훼손 - 문란한 성생활 - 수록된 향가 - 사용된 용어, 그리고 필사자 박창화 4. ... 화랑세기의 진위여부 - 화랑의 image훼손 - 문란한 성생활 - 수록된 향가 - 사용된 용어, 그리고 필사자 박창화 4.
또 위서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박창화의 창작품으로 보고 있는 필사본의 향가 「풍랑가」와 「청조가」에 대해서도 이종욱는 박창화가 필사했던 1930~40년대엔 향가연구가 태동단계였으므로 ... 」 원본을 베낀 것일까, 아니면 박창화가 다른 책들을 참고로 해 창작한 것일까? ... 중국의 황제 칭호인 제(帝)를 사용했다는 것은 필사본을 쓴 박창화 자신의 중국에 대한 자주적인 역사관의 표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즉, 박창화가 『花郞世記』를 위작했으며 발췌본은 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박창화의 작업의 소산이라고 기존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ㄷ. ... 이에 대해 이종욱③은 박창화가 평소에 화랑도를 난잡한 것이라고 언급한 사례를 들어 “박창화가 『花郞世記』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낮추어 평가한 것을 의미”, 그 이유로서 ... 이 자료는 박창화가 당시 일본 도쿄 소재의 도서관에서 국사연구를 하고 있었던 때 쓰인 것으로서, 당시의 박창화가 신라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단초를 알려주고 있다.
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서술할 때까지 남아 있었으나 이후 소실된 것으로 생각되어왔다. 1989년 2월에 남당 박창화가 일본 천황가의 보물창고인 쇼소인에서 필사했다고 주장하는 ... 특이한 점은 이들의 계통은 여자들로 이어지고 있으며 아들은 한 대에 한하여 모계를 이을 수 있었다고 한다. ) 박창화의 필사본 화랑세기에 따르면 마복자는 신라시대에 있었던 풍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