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 후 큰아들인 김만기가 관직에 나가기 전까지는 재물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윤씨 부인은 김만중, 김만기 형제의 교육에 재산을 아끼지 않았다. ... 이렇듯 김만중과 김만기 형제는 어머니의 적극적인 뒷바라지를 받으며 성장했으며, 이런 환경은 김만중이 어머니에게 깊은 애착을 형성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 한 번은 형이었던 김만기가 『좌전』을 갖고 싶어 하자 윤씨 부인이 베틀에 걸린 명주를 전부 베어 내어 책값을 다 치르자 남은 재물이 없었다는 일화도 있다.
. - 김만기, 복잡한 이혼문제 쉽게 해결하기! (이혼 나홀로 해결하기), 법문북스, 2018.04.20. - 윤성열, 이혼을 통한 사회적문제의 대두 해결방안은? ... , 충북대학교, 2018.06.12. 1) 하나은, 부부의 위기 아시아 이혼율 1위 불명예, GOOD NEWS, 2021.05.20. 2) 김만기, 복잡한 이혼문제 쉽게 해결하기!
또 다른 유적지로는 김만기 선생묘 및 신도비가 있다. 대야미동의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김만기 선생의 묘는 부인 한씨와의 합장묘이다. ... 김만기 선생이 그 유명한 『구운몽』의 저자 김만중의 형이자 숙종의 장인이기 때문이다. 묘표의 비문은 송시열이 지었고 차남인 김진규가 글씨를 썼다.
그래서인지 김만기와 김만중은 더 열심히 살았고 더 열심히 장원급제를 위한 공부를 했으며 그리고 부모에게 큰 효를 다하려고 노력했다. ... 이유에 대해서는 그의 배경 중 청나라의 군사들에 의해서 강화도가 함락당할 때 그의 아버지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순절하셨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어렵게 외가댁으로 가서 그의 형인 김만기와
임관기(29-50) 현종 6년 29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38세까지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30세 때 형 김만기는 2품직에 올랐다. 35세에는 형의 딸이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상당히 ... 구운몽 1)김만중의 생애(인조15년- 숙종18년 1637-92) -명문 광신김씨, 증조부 김장생과 종조부 김집은 예학의 대가 -광성부원군 김만기(형) 그의 딸이 숙종의 태자비가 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