曰是眞平王天賜帶也? 太祖受之?藏之內庫] 第二十六?白淨王?諡眞平大王?金氏? 大建十一年己亥八月卽位?身長十一尺?駕幸內帝釋宮[亦名天柱寺?王之所創]? 踏石梯?三石幷折?王謂左右曰?不動此石? ... 대건(大建) 11년 기해(서기 579) 8월에 왕위에 올랐는데, 키가 11자였다. ... 그리고 그 금과 쇠는 서울로 운반해 와, 대건(大建) 6년 갑오(서기 574) 3월[사중기(寺中記)에는 계사년(서기 573) 10월 17일이라고 하였다.]에 장륙존상을 주조했는데 단
신라(新羅) 진평왕(眞平王)과 선덕왕(善德王)의 시대에는 고구려(高句麗)?백제(百濟)?말갈(靺鞨)이 뒤섞여 침공하여 와서 백성들의 생활을 곤궁하고 고통스럽게 하였다. ... 후에 천개소문(泉蓋蘇文)이 죽자 그 아들 남생(男生)과 남건(男建)이 권력 다툼을 하다가 남생이 당나라에 항복하면서 국내성(國內城)을 바쳤다. ... ●고구려의 내부분열 고구려는 말엽에 내부분열이 일어나면서 결국은 멸망의 길로 들어가게 되는데요 대동청사에서는 천개소문이 죽자 그 아들 남생(男生)과 남건(男建)이 권력 다툼을 하다가
마땅히 수(水)의 대수(大數)를 따라 집을 육육(六六)으로 지어 36구(區)로 만들면 천지의 대수와 맞아 떨어져 내년에는 반드시 성스러운 아들을 낳을 것이니, 마땅히 이름을 왕건(王建 ... 또 선종은 일찍이 광왕(光王)이 되었는데 광군(光郡)은 곧 양주(楊州)의 속군(屬郡)이고 염관현은 항주(杭州)의 속현(屬縣)인데 모두 황해[東海]에 연접하여 상선이 오가는 지방이었다 ... 과연 아들을 낳아 작제건(作帝建)이라 불렀다. 뒤에 보육을 추존하여 국조 원덕대왕(國祖 元德大王)이라 하고 그의 딸 진의를 정화왕후(貞和王后)라 하였다.
누리면서 後唐과 通交까지 했다. ③ 作帝建 : 王建의 祖父로 松岳지방에 근거를 두고 활동을 했다. ... 시대적 상황 ☞ 中代 : 신라는 통일 후, 神文王을 거쳐 聖德王과 景德王까지 전성기로서 太宗武烈王系 왕권의 안정기였다. ☞ 下代 : 宣德王 때부터 元聖王 계통의 眞骨貴族들이 자기항쟁과 ... 哀奴의 난 - 적과적, 양길, 궁예, 견훤출현 → 孝恭王(헌강왕 의 庶子) → 神德王(朴) → 景明王(朴) → 景哀王(朴) - 견훤에의해 시해됨.→ 敬順王 - 견훤에 의해 왕위에 오름
왕건(王建)에 의해서?고려로 교체되었고, 결국 고려에 의한 후삼국의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었다(936년). 이와 같은?신라?말 고려 초의 변동은 새로이 성장한?호족세력에 의해서? ... 헌덕왕(憲德王)은 애장왕(哀莊王)을 죽이고 스스로 즉위하였다. 후에 흥덕왕(興德王)이 왕위를 이어 굶주린 백성을 보살피고 효행을 장려하였다. ... 신라에서는 세대를 셋으로 나누니, 태조부터 진덕여왕(眞德女王)까지 28왕은 상대(上代)라 하고, 무열왕(武烈王)부터 혜공왕(惠恭王)까지 8왕은 중대(中代)라 하고, 선덕왕(宣德王)부터
이때는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완산(完山)에 웅거하여 반란을 일으킨 지가 이미 3년이 되는 해이다. 25년을 지나서 무인년에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나라를 세웠고, 또 10년을 지나 ... 우리 동국의 필법(筆法)은 김생(金生)이 제일이고, 요학사 극일(姚學士克一)과 중 탄연(坦然)ㆍ영업(靈業)이 둘째가 되는데 모두 우군(右軍 왕희지(王羲之))를 본받았다.
왕건은 생전에 이것을 염려하여 미리 朴述熙를 불러 그로 하여금 惠宗을 보좌케한다. ☞ 惠宗의 王權을 위협한 代表的 勢力 ▶ 廣州大豪族出身 - 王規勢力 (王建의 16妃와 17妃를 그리고 ... 光宗卽位前의 政變 惠宗代의 政變 ☞ 배경 王建 생전에 그를 따르던 豪族勢力과 王室勢力이 왕건이 죽은 후에는 그의 후계자에게 까지는 충성을 하지 않았다. ... 우고자 함 ▶ 太祖의 제2자 堯 요의 세력 - 모친 : 神明王后 (忠州의 대호족인 劉氏가의 딸) 장인 : 朴英規 (왕건의 총애를 받는 인물 - 후백제 토벌 때 내응) 태조의 종제 : 王式廉
황주(黃州)·해주(海州)·봉주(鳳州) 등 여러 고을 백성들을 옮겨서 그 땅을 실(實)하게 하여 대도독부(大都督府)를 삼았는데, 광종(光宗) 11년 경신 【송나라 태조(太祖) 건륭(建隆 ... 에 국내성(國內城)으로부터 평양으로 이도(移都)하였는데, 보장왕(寶藏王) 27년 무진 【총장(摠章) 원년.】 ... 후조선(後朝鮮)이며, 그의 41대 손(孫) 준(準) 때에 이르러,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망명(亡命)하여 무리 천여 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준(準)의 땅을 빼앗아 왕검성(王儉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