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安國)이 ‘주자증손여씨향약’ 언해본을 출간하여 반포하는 등 향약 보급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 그리고 화천군 심정, 병조판서 이장곤, 판중추부사 김전(金詮), 호조판서 고형산(高荊山)등이 합문을 지키고 있었다. 중종은 사림세력을 제외시키고 조정의 주요 관직을 교체시켰다. ... 중종12년(1517) 6월 경상도 함양의 유생 김인범(金仁範)은 백성의 교화를 위해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孫呂氏鄕約)’이라는 향약의 실시를 주장하였으며, 3월에는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
안국빈은 이를 위해 관원 김태서(金兌瑞)와 함께 1743년(영조 19년)에 연행사로 북경을 방문해 안국린과 마찬가지로 흠천감의 퀴글러와 만나 서양의 천문과 역법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으며 ... 등이 주로 중도남북양총성도(黃道南北兩總星圖), 안국빈(安國賓), 433.4cm × 168cm, 속리산 법주사(法住寺) 소장 이이명 이후 1741년(영조 17년) 관상감 관원 안국린(安國麟
만년에 고향에 절을 창건하였을 때 문종은 화엄안국사(華嚴安國寺)라는 칙액(勅額)을 내렸다. ... 爛圓)을 주로 한 불사가 성행하였다. 1067년(문종 21) 흥왕사(興王寺)가 창건된 이후 이 절에 홍교원(弘敎院)을 두어 항상 화엄교의를 설하게 하였고, 1077년에는 금자화엄경(金字華嚴經
그밖에 김구(金絿), 박세희(朴世熹), 박훈(朴薰), 홍언필(洪彦弼), 이자(李자), 유인숙(柳仁淑) 등 수십명은 귀양가게 되고, 이들을 두둔한 안당과 김안국(金安國), 김정국(金正國 ... 이상과 같은 절차에 따라 1519년 4월 13일 천보된 120인의 후보자들을 근정전에 모아 시험한 결과, 장령(掌令) 김식(金湜), 지평 박훈(朴薰) 등 28인이 선발되었다.
그래서 北宋代에는 歐陽脩 등이 이를 正統論과 결합시켰으며 性理學의 발흥과 함께 胡安國이 春秋傳 30권을 저술하면서 춘추론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 아울러 이제현은 行軍記 에서 김취려가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은 점을 君子의 마음씀이라 하고, 또한 당시 몽고에게만 절을 하고 金에는 하지 않아 尊王의 義를 밝혔다고 평가하였다.
너무 뛰어났기 때문에 스승이었던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선생도 제자로 대하지 않고, 동등하게 학문에 대해 토론했다고 합니다. ... 성리학의 대가로 이름 높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입니다. 유희춘과 김인후 사이에는 3살이라는 나이차이가 있었지만 둘은 서로 격의 없이 지내는 친구사이였습니다.
개경나성이 완성되자 금강성(金剛城)이라는 ... 송은 고려와 협력하여 거란을 공격할 뜻을 비췄고, 발해 유민이 압록강 가에 세운 정안국(定安國) 또한 송과 화친하면서 거란을 협공할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거란은 국제적으로 고립될 ... 목종의 모후인 천추태후(千秋太后)와 김치양(金致陽)이 불륜관계를 맺고, 목종을 대신하여 그 사이에 나온 아들을 왕으로 잇게 하려하자 강조(康兆)가 군사를 일으켜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 "정안국(定安國)은 본래 마한의 종(種)으로서 거란에게 파한 바 되었다." ... 종래 발해에 대해서는 『삼국사기』·『동국통감』·『동사강목』 등에서 단편적으로만 서술뒤 이러한 성격은 한치윤(韓致奫)·홍석주(洪奭周)·정약용(丁若鏞)·김정호(金正浩) 등에게 일정하게 ... 발해가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한 나라이고 부여의 풍속을 간직한 나라라는 점을 일본에 강조하면서 고구려의 후예국임을 대외에 알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 속국고(屬國考): 정안국(定安國
강원 고성 금강산(金剛山) 신계사(神溪寺) 4. 강원 고산 설봉산(雪峰山) 석왕사(釋王寺) 5. 황남 해주 북숭산(北嵩山) 신광사(神光寺) 6. ... 평남 평성 봉린산(鳳麟山) 안국사(安國寺) 안국사는 옛 순천인 평성의 봉린산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 기도에도 뛰어나 꿈에 삼불로부터 천수(天水)를 받고 아미타불 근본주를 외우다 금강주(金剛珠)를 받았으며 준제주를 읽다 용들이 전신을 씻어주는 영험을 얻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