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622년에 죽은 뒤 '소가노 에미시는 태자의 아들 야마시로노에 왕을 배제하고 조메이 천황을 즉위시켰으며, 뒤이어 고쿄쿠 여제(皇極女帝)가 등극하자 에미시의 ... 상단에는 신라 천마총 등에서 보이는 천마(天馬터 7세기 중엽까지는 아스카(飛鳥)시대라고 해서 일본 역사의 무대는 규슈(九州)지방에서 긴기(近畿)지방으로 옮겨지며 쇼도쿠(聖德)태자 시절에는
호류사에 전하여 오던 백제 아좌태자(阿佐太子)가 그린 그의 초상은 현재 일본의 제실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저서에 불전의 주석서 《삼경의소(三經義疏)》가 있다. ... 이러한 불행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일본 고대국가 시절 쇼토쿠(聖德)태자{일본 요메이천황[用明天皇]의 아들. 우마야도황자[廐戶皇子] 도요토미미황자[豊聰耳皇子]라고도 한다.
당시에 활약한 명승 가운데 위덕왕 때의 혜총(惠聰)은 일본에 계율종(戒律宗)을 전하고서 쇼토쿠태자[聖德太子]의 스승이 되었으며, 역시 성왕 때 인도에 유학한 겸익(謙益)은 불법을 연구하고 ... 그러나 643년에 고구려와 화친한 것을 계기로 당항성(黨項城)을 공략하는 등 지나친 외정과 사치스런 태자궁(太子宮)·망해정(望海亭)의 건축 등 향락에 빠지고 흥수·성충 등의 인재 배척이
목적은 중국의 우수한 선진문물을 수입하고 또 외교관계를 맺음으로써 대항관계에 있던 신라등 한반도의 여러 나라에 대하여 자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자 하였던 것이다. 4) 내정의 정비 聖德太子 ... 그후 민달(敏達)천황의 부인인 추고(推古)를 옹립하게 되는데 그녀가 일본최초의 여자천황인 것이다. 2) 성덕태자의 섭정 그리고 황태자에는 요오메이(用明)천황의 왕자인 성덕(聖德)태자를 ... 官位二十階)의 제정, 헌법십칠조(憲法十七條) ) 제 1조에 '和로써 貴하게 한다'고 한 것은 왕족과 여러 氏의 세력다툼을 경고하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현실적으로는 현재의 집정자인 太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