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란사라는 여성, 이화학당에 입학하다) 성이 하씨요 이름이 란사인 하란사(河蘭史)는 평양 출신으로 본래는 김해 김씨 출신이나(본명은 전해지고 있지 않음), 이화학당에서 세례를 받고 ...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란사는 ‘열정’이 있는 여인이였다. ... 하란사, 한국 여성들을 일깨우다) 또 1911년부터 하란사는 터틀(O.M Tuttle)과 함께 이화의 지교로 있던 서울의 서대문여학교, 아오개(아현)여학교, 종로여학교, 동대문여학교
하란사는 1908년 박에스더ㆍ윤정원과 함께 경희궁에서 고종의 훈장(은장)을 받은 바 있다. ... 이렇게 하여 당대의 여걸이자 독립운동가인 하란사는 45세의 한창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선교사 베커(A.L. ... 하란사는 미국 유학 후 돌아온 처음 4년 동안 이 학교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이 학교는 후에 감리교 협성여자신학교가 되었남아 해외 동포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하란사 1895 년 이화학당 졸업생 . ... 하란사와 함께 스크랜턴의 교육 사업을 적극 후원하며 , 후에는 진명 여학교를 설립한다 . ... 또한 박에스더 , 하란사 , 황메계 등의 등장인물들 역시 완벽한 위인의 모습보다는 실수와 실패 , 좌절을 겪으며 사회에 진출하는 모습 을 그릴 것이다 .
이문회란 이성회, 하란사 선생의 도움으로 만든 이화 학생 자치 단체이다. ... 이러한 와중에 관순은 사감으로 있던 하란사 선생님으로부터 민족의 독립에 대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다. ... 이러한 그녀에게 사감 하란사 선생님은 눈앞의 작은 것에 매달리지 말고 큰일을 생각하라는 조언을 해준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정신여학교의 터전을 닦은 산마리아, 최초의 여학사 하란사 등이 대표적이다. ... 출신 지역 계층(가문) 결혼 유무 업 적 박에스더 (김점동) 1879(1877) -1910 의사 이화학당,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 서울 정동 평민 (광산김씨) O 최초의 여의사 하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