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수택은 본래 제사와 군사를 공동으로 하는 씨족제적 읍공동체의 전렵(田獵)장소로서 중요 의미를 갖고 있었다. ... 여기에서 공동체의 장은 씨족 구성원을 이끌고 전렵을 행함으로써 병사(兵事)를 익히는 동시에 사냥한 그 획물(獲物) 중의 대수(大獸)는 우선 공동에의 제사를 위한 공물이나 군사자재에
백제 역시 고구려처럼 전렵을 행하였는데, 고구려와 백제의 전렵에는 어느 정도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 다시 말하자면 전렵을 단순한 사회경제 활동 즉, 생산수단으로의 목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또한 전렵을 통해 상서로운 동물들의 희생으로 행해지던 제의적 행사로만 보지 않았다. ... 전렵과 열병을 가진 정치적 성향이 전쟁과 그대로 연결 되기 때문이다. 전쟁의 유형지속되던 전렵과의 관련성을 가진 공격전쟁을 수행했던 것으로 볼때 백제의 전쟁유형은 狩獵?
수렵사회형인 고구려는 전렵을 시행하였고, 고구려적 요소와 남방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백제는 수렵과 농경 문화형으로써 전렵과 열병이 모두 시행되었다. ... 전렵과 열병을 시행하는 것은 전쟁을 대비한 군사훈련을 하면서 국왕의 군사 통수권을 확고히 한다는 것이다. ... 이러한 전렵과 열병은 삼국 각 국가마다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데, 저자는 이것을 각 국가가 처해진 사회적 환경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전렵은 사냥을 나가는 것이라고 사전적으로 정의되어 있고, 여기서의 전렵은 왕이 어느 특정한 시기에 사냥을 나가는 것이다. 흔히 그 시기는 추계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고 한다. ... 고구려의 군사훈련은 주로 전렵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언급 되어있다. ... 백제와 달리 부여-고구려 계통도 아니기 때문에 신라에서 전렵을 했던 사료는 없다.
또한 농경기반 사회에서의 이런 전렵은 수렵의 목적보다는 군사훈련의 의미를 더 크게 가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백제에는 전렵과 열병이 둘 다 행해졌다. ... 전쟁수행과 기능 이 책의 2장에서는 1장의 전렵과 열병 등의 군사 훈련에 이어서 각국의 전쟁 수행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고구려 같은 경우는 사계절에 걸쳐 전렵을 수행했다. ... 하지만 상대적으로 무력이 약했던 신라에는 공격적인 태세를 취하면서 전렵과 관련된 공격전쟁을 줄곧 수행하곤 했다.
삼국사기의 관련 기사에 나타난 전렵과 열병의 계절별 횟수를 통해 수렵 경제적 요건이나 농업 경제적 요건을 추출하고, 시기에 따른 횟수를 통해 전쟁과 전렵, 열병의 상관관계를 유추하고 ... 예를 들어 농업 경제적 양식을 유추하기 위해 열병이나 순수 등이 시행된 월 별 횟수의 데이터로서 파악한 것들이라 던지, 시기별 전렵 횟수를 분석하여 전렵과 전쟁수행의 상관관계, 군사훈련으로서의 ... 전렵의 성격을 밝히고, 대외 전쟁 수행 양상을 파악한 것 등이 그것이다.
전렵을 수용할 수 없었으므로 전렵 대신 열병이 이루어졌다. ... 통수는 전렵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고구려의 전렵은 5~7일간 추계, 동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 이러한 전렵의 계절적 편향성은 추계의 군사훈련과 동계의 전쟁수행과 관련된 것으로 저자는 파악한다. 그렇다면 고구려는 군사 통수에 왜 전렵을 이용했는가에 의문을 둘 수 있다.
따라서 군대를 항시 강병으로 유지해야만 했고 그에 따라 군사훈련은 전렵문화이고 피지배층은 농경문화였던 백제에서는 전렵과 열병의 형태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 삼국시대의 군사훈련은 전렵과 열병의 형태로 나타났다. ... 왜냐하면 전쟁의 주력은 보병이었기 때문에 기마의 전렵을 실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군사적인 필요성에 의해서 열병을 실시했지만 농업의 진흥에도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