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로는 이충익이 지은 별이산이다. 그 뒤로는 당완의 화 채수봉이 이을 것이다. ... 이충익이 북한의 갑산군을 떠나며 지은 시로 갑산으로 유배된 양부가 사망하고 갑산과 영원히 이별할 때의 상황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 마음이 견딜 수 없이 슬퍼 맨 정신으로는 이겨낼 방도가 없는 이충익의 슬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만 같다. 망루와 나무는 너무 괘념치 말기를 바란다.
둘째로는 겉으로 양명학을 비난하고 있기는 하나 그 사상을 종합해보면 이는 오히려 속으로는 양명학을 주장하던 것을 가릴수 있는 이들로써, 이 인물들로는 이광사, 이영익, 이충익, 민옥 ... 몰랐을 지라도 양명학파라 하기에 의심없는 이들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속한 사람은 정제두를 위시하여 그의 아들이자 문하생인 정후일, 석천, 신작, 원교 이광사, 연려실 이긍익, 숙원 이충익
이건방의 원론 이건방은 이충익의 고손으로 그의 〈원론〉 상·중·하와 〈속원론 〉을 보면, "이른바 도와 의는 반드시 참된 도와 의가 아니다. ... 그로부터 이종휘·이광사·이충익·정동유·이건창·이건방·박은식·정인보 등으로 계승·발전되었다. 조선의 양명학파 조선 양명학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조선을 대표하는 양명학자는 정제두·이충익·이건방 등을 들 수 있다. 정제두의 양지체용도 정제두는 양지를 체와 용으로 구분하여 양지체용도를 만들었다.
이충익은 {답한생서(答韓生書)}에서 성령문학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는 또 글은 반드시 혜식(慧識)을 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라고 하여 양지의 발휘인 일진무가를 말하였는데, 이충익도 {가설(假說)}에서 이미 진가론(眞假論)을 전개하였다. 이것은 강화학파에서 일관된 논리였다. ... 그로부터 이종휘(李鍾徽), 이광사(李匡師), 이충익(李忠翊), 정동유(鄭東愈), 이건창(李建昌), 이건방(李建芳), 박은식(朴殷植), 정인보(鄭寅普) 등으로 계승·발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