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현존하지 않는 한 정자 난간에 기대어(小亭憑欄)’란 시구를 보면 ☞「사십팔영」중 제1영 ‘자그마한 정자 난간에 기대어 (小亭憑欄) 소쇄원의 가운데 경치가 소쇄정에 통틀어 모였네 ... ☞「사십팔영」중 제22영 ‘평상바위 위에서 바둑을 두니(床巖對棋)’ 바위 기슭의 넓고 평평한 곳에 대숲이 그 절반을 차지했구나. ... ☞「사십팔영」중 제14영 ‘담장 밑을 흐르는 물(垣竅透流)’ 걸음마다 흘러가는 물결을 보며 거닐면서 시를 ?셈릿 생각이 더욱 그윽해.
이곳의 주인임을 알리는 소쇄옹으로 불렸던 양산보는 소쇄원을 너무나도 아낀 나머지 "절대로 남에게 팔지 말 것이며. ... 조선 중기 최고의 유학자로 호남시단을 대표했던 하서 김인후가 관직에서 물러나 담양에 머물며 지은 소쇄원 48영의 서경시는 누정시의 대표적인 예이다. ... 이곳이 바로 소쇄원의 중심이 되는 오곡(五曲)이다. 소쇄원의 머리 부분에 해당되는 이곳은 마치 자궁의 형상을 하고 있다.
제월당 마루 위에는 소쇄원 사십팔영의 한시가 목판에 새겨져 있다. 또 제월당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푸르른 나무들과 함께 어우러져있는 돌담이 있다. ... 그렇게 40분여를 버스를 타고 내린 곳, 바로 담양 광주호 상류에 위치한 소쇄원 이였다. 소쇄원 입구에 알림판이 있는데 이 내용은 소쇄원의 유래에 대해 적혀있었다. ... 소쇄원은 조선 중기에 양산보란 사람이 조성한 것으로 소쇄원이라 명명한 이유는 양산보의 호가 소쇄옹이였기 때문에 호를 따라 지었다.
연못가나 섬에는 괴석을 배치하고, 못 속에는 연꽃을 심은 것이 가장 많으나, 소쇄원 지당처럼 순체를 심은 것도 있다. ... 연 못은 일반적으로 네모진 것이 많으나 지형에 따라 자연을 이용한 연못을 파기도 한다. ... 백제는 귀족문화 였기 때문에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가람의 배치도 그 영 향을 받아 1탑 1금당식, 1탑 3금당식, 3탑 3금당식 등 다양하다.
김인후가 소쇄원을 둘러보고 그 아름다운 정경과 기능을 노래한 ‘소쇄원 사십팔영’의 오인시를 남겼다. ... 또한 소쇄원을 흐르는 물은 소쇄원 소리 영역에 큰 역할을 한다. 십장폭포는 물소리의 음원으로 소쇄원 전체를 덮는다. ... 그후 1755년에 소쇄원의 전경을 펼친 그림으로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가 남아 있다. 이를 통해 소쇄원의 원형을 알 수 있으며, 현재는 사적 제304호로 지정돼 있다.
이를 위해 그의 생애와 사우관계를 살펴보고, 시관(詩觀)과 소쇄원사십팔영(瀟灑園四十八詠) 을 중심으로 작품세계를 살펴보겠다. ... 결론 이상과 같이 김인후의 생애와 교우관계, 그리고 그의 시관과 소쇄원사십팔영(瀟灑園四十八詠) 을 중심으로 한 작품세계를 살펴보았다. ... 마지막에 살펴본 소쇄원사십팔영(瀟灑園四十八詠) 은 그의 대표적인 한시로 소쇄원의 자연경관을 노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누리며 조화로운 인간세상의 이상향도 희망하였고
「소쇄원48영」중 많은 구절이 적용되는 장소 가운데 한 곳이며, 제 37영 ’동대하음桐臺夏陰’에서 동대 주변의 분위기를 노래하였다. ... 이 연못과 물확은 오곡문 옆 커다란 담 구멍을 통하여 흘러 들어오는 시냇물을 나무에 홈통을 판 물다리를 따라 받아들이고 있다. ... 이 조그마한 폭포를 십장폭포라 부른다. 넓고 거대한 암반 위에는 위락공간으로서 상암, 암탑, 광석(床岩, 岩榻, 廣石) 등의 명칭이 붙여졌다.
제월당에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쓴「소쇄원사십팔영시(瀟灑園四十八詠詩)」(1548년)가 걸어져 있으며, 1755년(영조31년)에 목판에 새긴「소쇄원도(瀟灑園圖)」가 현재까지 남아 ... 소 쇄 원 ■ 전라남도 사적 제 304호(1983년 7월 20일 지정) ■ 소쇄원의 개요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번지에 있는 소쇄원(瀟灑園)은 조선시대 때 소쇄옹 양산보 ... 김인후의 소쇄원 48영의 시제와 의미 1. 小亭憑欄 (소정빙난) : 자그만한 亭子의 난간에 의지함 2. 枕溪文房 (침계문방) : 시냇가의 누운 글방에서 3.
장원봉과 까치봉 사이로 흘러내린 계곡의 물을 그대로 받아들여 폭포를 이루게 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나무 홈통을 파고 연못으로 물을 끌여들인 지혜스러움을 보인 것은 물론, 그 연못 아래로 ... 이 식영정이십영은 후에 정철의 《성산별곡》의 밑바탕이 되었다. 정자의 규모는 정면 2칸, 측면 2칸이고 단층 팔작지붕이며, 온돌방과 대청이 절반씩 차지한다. ... 당시 사람들은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高敬命), 정철 네 사람을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불렀는데, 이들이 성산의 경치 좋은 20곳을 택하여 20수씩 모두 80수의 식영정이십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