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수현은 황군장병 위문용 부채를 그려 일제에 헌납하는 등 자발적인 친일행태를 보였다. ... 중외일보는 나중에 조선일보에서 옮겨간 노수현을 내세워 '멍텅구리'를 본뜬 '연애경쟁'을 잠시 연재org ... 『멍텅구리 헛물켜기』의 성공에 힘입어 노수현은 20-30년대 동안 활발하게 만화작품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멍텅구리 헛물켜기』의 성공에 힘입어 노수현은 20-30년대 동안 활발하게 만화작품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 스승에게서 배운 화법을 기초로 했으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노수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 노수현의 삽화는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어 선전 효과가 높기 때문에 그 당시 사회전반에 걸친 친일 그림의 영향력이 컸음을 알 수 있다. 1)멍텅구리 헛물켜기 - 1924년 10월 13일부터
식민지적 사고관념을 가진 작가들이 해방 후 새로운 정부에서 만든 “국전”을 이끌어 나가게 되었다. (3) 친일 미술가 및 작품 친일 미술가는 김기창, 구본웅, 김은호, 김종찬, 노수현 ... 외친 이른바 대동아 공영권에 부응하는 것으로 전쟁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1940년대 1940년 10월에는 ‘조선 남화 연맹전’에 본격적으로 전쟁을 예찬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던 노수현
. ■ 노수현 : 盧壽鉉 (1891 ~ 1978) 노수현은 황해도 곡산 출생으로 호는 심산(心山) 또는 심산(心汕)이라 하였다. ... 심산 노수현이 그린 산수화에는 바위산의 힘센 골격미가 돋보인다. ... 심산 노수현은 생전에 "흙보다는 바위산이 좋고 또 내 화의(畵意)에 맞다"라고 말하며 붉은 기가 감도는 희미한 갈색의 바위산을 그의 상징으로 승화시켰다.
노수현 ? 이용우 등 연령의 차가 10년 안팎의 선후배로 구성된 신진 그룹은 조석진과 안중식이 타계한 20년 후 그 차세대로서의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 개인적 삶에 있어서도 전환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23세의 나이였지만 당시의 사회적 연령으로는 거의 중년에 들어선 해였다. 1923년에 소정이 청천 이상범, 묵로 이용우, 심산 노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