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근(權近)은 신라가 먼저 건국되었다가 맨 나중에 망했기 때문에 신라를 중심으로 삼국기를 저술한다고 하였다. ... 권근은 동국사략에서 즉위년칭원법을 쓰게 되면 1년에 두 사람의 군주가 있게 되므로 천무이일 인무이왕(天無二日 人無二王)의 명분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를 유년칭원법으로 개서하였으나 세조대
이를 체계화 하여 전파한 사람은 이색과 정몽주이고, 현실정치에 이용한 사람은 정도전과 권근이었다. ... 정도전과 권근은 성리학 원리에 따라 군주론을 펴고, 불교ㆍ도국에서의 그것과 다르게 정복왕조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더군다나 고려의 경우에는 외부의 침입으로 인한 멸망이 아닌 내부의 개혁
고려의 이색, 정몽주, 정도전, 권근, 길재 등이 유명한 성리학자이고 배불론자(불교를 배척함)인 정도전이 조선 건국의 주역이 되면서 성리학이 국교가 되었다. ... 성리학의 목표는 성인이 되는 것이고 권근이라는 학자가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기초를 세우고 이황 때 크게 발전했는데 작성한 문집인 입학도설에 따르면 “도심이 인심을 주재하여 인욕을 없애고
권근은 불교에 아주 호의적이었으며, 이색은 아예 불교도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숭유억불을 국가이념으로 삼은 조선에서 이것은 용납될 수 없었다. ... 사실, 맨 처음 문묘 종사가 논의되었던 계보는 정몽주를 시조로 하는 계보가 아닌 권근-이제현-이색으로 이어지는 계보였다. 하지만 이 계보는 문묘에 오르는 데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