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우도에 연고를 둔 함인재 정국채는 19세기 전반을 전후로 한 시기를 주요 활동기로 삼았던 노론 계열의 재야 유학자다. 남명학파의 본산 지역에서 자신의 학적⋅이념적 소속을 노론계로 정위시킨 사실도 독특하지만, 정국채의 경우 정주학과 농학 및 예학 등과 같이 제 범주를..
眉叟가 지은 神道碑는 다시 서지 못 했고, 묘소 밑에는 尤庵이 지은 神道碑만 서 있게 되었다. ... 그 뒤 용주보다 후배로 南人의 영수인 眉叟 許穆과 西人의 영수인 尤庵 宋時烈에게 청문하여 두 편의 神道碑文를 받았다. ... 尤庵이 지은 神道碑文은 수록되지 않았다.처음에 南人의 영수와 西人의 영수에게 南冥의 碑文을 동시에 받은 것이 論難의 발단이었다.
士農窩 河益範(1767-1813)은 滄洲 河憕 및 그의 손자 河洺으로 이어진 가학 을 계승한 바탕 위에 尤庵學派의 性潭 宋煥箕에게 경학과 성리학을 배우고, 鏡 湖 李宜朝에게 예학을 ... He enlarged his academic boundary and promoted friendly relation with the U-am(尤庵) family when he was ... Sa-nong-wa(士農窩) Ha, Ik-beom(河益範, 1767-1813) belonged to the school of U-am(尤庵學派) which it connected each
UAm(尤庵) could give a relatively free praise to NamMyung(南冥), because he was in the opposite party. ... But comparing with DaeGok(大谷), NaeAm(來庵), and UAm(尤庵)’s epitaphs, YongJu(龍州)’s epitaph comparatively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선생을 기리는 곳 우암사적공원을 답사하며... 대전 동구 가양동 65번지. ... 이 곳은 우암사적 공원으로 조선 후기 대표적 유학자인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선생을 기리는 유적지 이다. ?1991 ~ 1997 서원 복원이 되었다.
유학의 중심지는 옥종면이며, 그 중에서도 안계리가 핵심 지역이라고 규명해 볼 수 있다.학맥 형성 양상을 살펴본다면, 남명학파 11명, 寒洲系列 4명, 蘆沙系列 5명, 星湖系列 3명, 尤庵系列 ... 寒洲) Affiliation has four, Nosa (蘆沙) Affiliation has five, Seongho (星湖) Affiliation has three, Wooam (尤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