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의 진도 항전
- 최초 등록일
- 2008.11.05
- 최종 저작일
- 2006.11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삼별초의 진도항쟁
목차
1. 머리말
2. 본 문
Ⅰ. 삼별초의 진도정부수립과 그 성격
Ⅱ. 삼별초의 세력 확보와 대몽항쟁
Ⅲ. 진도 정부의 붕괴
3.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13세기의 고려 밖의 상황은 몽고세력이 흥기(興起)하던 때였다. 고려는 무신정권인 최씨 정권이 확립되고 있던 때였으며, 고종 18년(1231)~고종 46년(1259) 동안 고려에 대한 6차례의 몽고침략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고려는 몽고로부터의 압박과 많은 피해를 받고 있었다. 고려 내에서는 몽고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천도를 단행하였고, 전국적으로 민(民)들의 몽고에 대한 저항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쿠데타가 일어나 최의를 타도함으로써 최씨정권이 무너지고, 원종11년(1270) 몽고에 대한 복속을 의미하는 개경환도가 결정되었다. 그 전까지 무신정권의 항몽(抗蒙)추진의 핵심기반이였던, 삼별초가 봉기를 하게 되었다. 이로써, 삼별초의 본격적인 대몽항쟁이 시작되었고, 그 중 가장 반몽(反蒙)의 성격이 강했던 진도항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본 론
Ⅰ. 삼별초의 진도 정부 수립과 그 성격.
60여년간의 장기집권을 유지하며 항몽의 성격을 띄고 있었던 최씨정권이 무너지고, 태자의 몽고 입조(入朝)와 고려의 개경환도가 이뤄졌다. 이 개경환도는 몽고에 대한 복속을 의미했다. 삼별초란, 정예의 군사들로 조직된 야별초가 확대재편되면서 나눠어진 좌별초와 우별초, 그리고 몽고에 포로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로 구성된 신의군으로 이뤄진 군대였다. 이들은 최씨정권 때에, 몽고와의 항전에서 선두에 섰던 핵심적인 반몽집단이였다. 이렇게 최씨정권 하에서 몽고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였던 삼별초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원종 11년, 강화도로 장군 장지저(張之氐)를 파견하여 삼별초를 혁파하고 명부를 거두어갔다. 이에 삼별초는 분개하였고, 그것이 봉기로 이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삼별초의 봉기는 왕명에 불복한 반란이 아닌,
참고 자료
▶ 윤용혁, 「삼별초 진도정권의 성립과 그 전개」, 한국사연구회, 1994.
▶ 강봉룡, 「바다에 새겨진 한국사」, 한얼미디어, 2005.
▶ 이덕일, 「살아있는 한국사2」, 휴머니스트, 2003.
▶ 박용운, 「고려시대사(下)」, 일지사 , 2003.
▶ KBS, 「역사스페셜1 : 삼별초-진도에 또다른 고려가 있다」, kbs영상산업단,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