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업 경영론] 서울의 다양한 관광명소 분석 및 서울관광 일정 계획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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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관광경영학 수업 중 작성한 레포트 입니다.서울에서 1일 일정의 관광 일정을 작성하여보았습니다.
서울의 명소 분석, 정확한 시간관리, 교통편, 가이드 선정, 비용까지
완벽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목차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목차
[여행업 경영론] 서울의 다양한 관광명소 분석 및 서울관광 일정 계획표< 청계천 >
1. `청계천`의 뜻
2. 청계천의 간단한 역사
3.청계천의 명물 볼거리
-청계광장-
-팔석담-
-모전교-
-광통교-
-광교-(넓을광 다리교)
-장통교-
-삼일교-
< 시청 >
< 덕수궁 >
-교대식
< 남대문 >
-서울숭례문
-남대문(국보 제1호)
-남대문시장
< 명동 >
일자
시간
교통
장소
세부일정
지상비
보험료
기타물품비용
여행사마진
GRAND TOTAL
< 소감 >
본문내용
< 청계천 >1. `청계천`의 뜻
`개천을 끼끗이 치웠다`는 뜻의 `청개천(淸開川)"이라는 글귀가 그후 청계천(淸溪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2. 청계천의 간단한 역사
청계천은 총길이 10.84km로 북악산, 인왕산, 남산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이곳에서 모여서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 근처에서 중랑천과 합쳐져 한강으로 흐르는 하천으로, 본래의 명칭은 ‘개천(開川, 하천을 수리하여 열었다는 뜻으로 사용하다가 후에 하천의 보통명사가 됨)’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이름이 청계천으로 바뀐 것.
특히 우리나라의 모든 강물이 모두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데, 청계천만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역수(逆水)하는 길한 물기운을 가짐으로써 나라 도읍지의 명당수(明堂水)가 되었다.
3.청계천의 명물 볼거리
-청계광장-
청계천 상징 조형물인 `스프링(Spring)`, 무려 34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조형물이 청계천 역사는 물론 우리나라 문화와도 잘 맞지 않는다는 의견 때문이다.청계천 상징 조형물 `스프링`은 미국의 팝아트 미술가 `클래스 올덴버그`와 그의 부인의 공동 작품이다.
하늘로 솟은 삼각뿔 모양의 조형물은 높이 20m로, 붉은색과 푸른색 알루미늄 리본이 휘날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 작가는 기자회견에서 작품을 만들 때 `도자기와 한복, 보름달 등의 한국적인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얻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청계천 시점부인 태평로 입구에 가면 청계 광장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문화공간이다.
광장과 분수, 탐방로들을 갖추고 있다. 진입 계단을 따라 들어가면 만남과 화합을 상징하는 8도석과 청계천을 600분의1로 축소해 놓은 미니어처를 구경 할 수 있다. 또한 분수와 벽면을 타고 흐르는 청계마당 벽천도 눈에 띈다.
-팔석담-
八石潭은 모전교까지 폭 21m, 길이 60m의 구간으로서 과거의 조선 8도와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에 흐르는 물의 의미를 담기 위한 각 도를 상징하는 석재조형물인 8도 저수호안석으로 구성하였고, 八石潭은 보행자들이 물과 직접 만나면서 경험할 수 있도록 산책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거 조선 8도를 나타내는 석재조형물은 각 지방을 원산지로 하는 두개의 통석과 그 통석들의 사이 갈라진 틈에 설치된 분수를 가지며, 분수를 통해 뿜어진 각 도의 분수물이 청계천에 합류됨으로써 끊임없이 흐르는 물의 생명력과 8도를 연결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팔도의 화합을 상징하는 친수형 저수호안으로 각 팔도산지의 석재를 이용하여 형상화하고 팔도의 석재들 사이에는 화합의 물길을 형상화하는 작은 물길이 연출되도록 분출구를 설치하였고, 八石潭 바닥 또한 석재로 되었습니다.
팔석담에 사용된 돌은 경기 포천의 운천석, 강원도 동해의 동해석, 춘천의 후동석, 경남 함양의 함양석, 경북 울릉도의 몽석, 제주도의 제주석, 전남 담양의 담양석, 경남 함양의 마천석, 가평의 가평석, 충남 천안의 천안석, 전남 고흥의 고흥석 등이며, 보행자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청계천 산책로와 연결되어 있다.
-모전교-
옛 교량명칭으로 길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과일을 파는 과전(果廛)을 `모전[隅廛]’이라고 불렀는데, 이 다리가 바로 그 모전 부근에 있었으므로 그렇게 이름하였다.
종로구 서린동과 중구 무교동 사이의 네거리에 있던 청계천의 옛 다리이다. 부근에 토산 과일을 파는 모전(毛털모 廛가게전)모이 있어서‘모전다리’즉 모전교(다리교), 모교라고 불렀다. 그러나 원래는 태종 12년(1412) 종묘입구 서쪽의 개천을 석축(石築)으로 방축하고 동쪽을 목작방축(木作防築)할 때 석교로 조성하였다. 당시는 신화방동구교라 불렀으나 영조 연간(年間)에 작성된 도성삼군문분계지도(都城三軍分界之圖)에는 모전교로 기록되 전한다.
-광통교-
모전교와 광교사이에 위치한 이 다리는 대표적인 청계천이 석교로, 신덕왕후의 옛 무덤 터에 있던 돌을 옮겨와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데 힘썼다. 원래있던 자리에서 좀 옮겨지긴 했지만, 역사적 사료로도 가치가 있다.
지금 서린동 124번지 부근에 있었던 다리인데 광통방에 있는 큰 다리였으므로 처음에는 대광통교라 하였다. 특히 옛부터 서울에서는 큰 다리로 알려져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도성의 많은 남녀가 이 곳에 모여 답교(踏밟을답 橋다리교) 놀이를 하던 곳으로 유명하였다.
서린동 124번지 부근에 있던 다리이다. 지금의 보신각이 있는 종로 네거리에서 을지로 네거리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청계로와 만나는 길목에 놓여 있었던 다리이다.
조선시대 광통방(廣通坊)에 있던 큰 다리였으므로 대광통교(大廣通橋)라 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북광통교(北廣通橋),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대광통교, 「도성지도(都城地圖)」에는 광통교, 「수선전도」에서는 대광교(大廣橋) 등으로 각각 기록되어 있어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같은 다리를 나타내는 말이며, 일상적으로 대광교 혹은 광교라고 불러왔다.
이 다리에 놓여진 돌들은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의 계비 강씨의 묘를 황화방 정동에서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기고 당초 묘에 썼던 돌들을 옮겨 다리를 건설하는 데 사용하였다. 왕비의 묘에서 잘 다듬어진 돌들을 다리를 건설하는데 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나 조선초기의 정치상황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1958년 광통교를 복개한 이후 다리의 돌에 새겨진 문양을 볼 수는 없지만 매우 정교한 구름무늬와 당초(唐草)(덩굴풀)무늬, 그리고 한가운데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에 관을 쓴 신장상(神將像)귀신신 꾸밀장 코끼리상으로 신들이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이나, 불교를 지켜주는호법신장을 돋을새김한 돌들이 놓여 있었다. 이러한 문양의 돌을 복개된 청계천 내부로 들어가면 아직도 그래도 남아 있어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조흥은행 앞에 옛다리를 축소복원한 모형이 있다. 2003년 7월 시작된 청계천복원공사의 일원으로 조선시대의 대광통교가 원래있던 자리에 광교가 새롭게 놓였다. 광교에서 청계천 상류 쪽으로 155m쯤에 대광통교를 복원한 광통교가 놓여있다. 사람만 다닐 수 있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차량의 교통 흐름을 막지 않기 위해 원래 위치보다 상류에 배치하였다.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부분과 창덕궁 및 탑골공원에 흩어져 있던 부분을 찾아내 활용하여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참고 자료
NAVER.COM 지식검색DAUM.NET 카페 활용
문화 관광부 SITE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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