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입문-지역조사
- 최초 등록일
- 2008.02.24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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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지리학입문-지역조사에 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강서구 동 이름의 유래와 염창동의 지리적 요소
2. 염창동의 대중교통
3. 동국대학교의 생활권
3. 학림관의 경관변화
4. 염창동의 인구변화
5. 한강문화
본문내용
1. 강서구 동 이름의 유래와 염창동의 지리적 요소
현재 강서구에는 염창동, 등촌동, 화곡동, 가양동, 마곡동, 발산동, 방화동, 개화동, 과해동, 오곡동, 오쇠동 이렇게 12개의 동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유래를 찾아보면 지리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
등촌동(登村洞)
등촌중학교 앞에 있던 등촌리가 오늘날 등촌동이 되었다. (옛날 등촌리는 현재 등촌1동, 백석리는 등촌2동이 되었음)
화곡동(禾谷洞)
땅이 기름져 골짜기 사이마다 벼가 잘 되므로 벼가 익어가는 골짜기 마을이란 뜻의 화곡동이라고 불렀다.
가양동(加陽洞)
조선조 양천현의 행정중심지로서 양천현아가 있었고 또 양천향교가 지금도 남아있다. 강서구에서 문화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으며 강서구 역사의 중심지이다.
마곡동(麻谷洞)
이곳에서 삼베가 많이 났기 때문에 에 마곡동이라 하였다. 원래 고고마진 나루터가 있었던 어촌이었다.
발산동(鉢山洞)
수명산 (파려산,발산)이 마치 밥주발을 엎어놓은 형국이라 하여 발산이라 불렀다.
공항동(空港洞)
원래 송정리였으나 김포비행장이 들어서면서 공항동이라 하였다.
방화동(傍花洞)
사시사철 꽃향기가 퍼지는 개화산 옆에 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방화동이라는 동명이 생겼다.
개화동(開花洞)
꽃이 활짝 핀 모양이라는 개화산 아래에 발달한 마을이므로 개화동이라 불렀다.
과해동(果海洞)
마을모양이 마치 서해바다로 뻗어나가는 오이모양 이라고 하여 과해동이라고 하였다.
오곡동(五谷洞)
옛날 골짜기 5개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었다.
오쇠동(五釗洞)
옛날 이곳에 쇠노를 만들던 사람 다섯명이 도망와 숨어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염창동(鹽倉洞)
조선시대에 소금보관창고(鹽倉)가 있었기에 염창동이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