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에 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6.11.08
- 최종 저작일
- 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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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고찰에 관한 레포트 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일본서기』의 기사
(2) 『송서』의 기록
(3) 백제 칠지도
(4) 광개토왕 비문
(5) 분국론
(6) 가야의 왜인설
(7) 백제군사령부설
(8) 외교사절설
Ⅲ. 결론
본문내용
Ⅱ. 본론
(1) 『일본서기』의 기사
『일본서기』에는 대략 임나 관계 기사가 68군데에 걸쳐 보이고 있다. 야마토 정권과 임나와의 관계는 숭신천황(崇神天皇) 65년(3세기 중반) 임나국(任那國)이 소나갈질지를 보내서 조공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후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섭정 전년 신라를 정벌하고 고구려·백제의 항복을 받은 다음, 신공 섭정 49년(369)에는 비자본·남가라·녹국·안라·다라·탁순·가라 등 소위 가라 7국을 평정함으로써 아마토 정권과 임나 사이에 실질적인 종속 관계가 시작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야마토 정권은 임나 지역을 직접 지배하면서 백제의 내정에 간섭하게 되었다. 그런데 532년경 남가라·탁순·녹기탄 등이 신라에 병합됨에 따라 야마토 정권이 그 부흥을 위해서 노력하다가 흠명(欽明) 23년(562) 잔존 임나 제국이 신라에 완전히 통합됨으로써 임나와의 실질적인 관계가 끝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임나가 신라에 통합된 뒤에는 야마토 정권이 임나를 회복하기 위하여 신라를 정벌하거나 신라로 하여금 임나에 조(租)를 바치게 하다가 효덕천황(孝德天皇) 대화(大化) 2년(646)에 고향현리(高向玄理)를 파견하여 김춘추를 인질로 바치게 하고 신라가 바치던 임나의 조를 명하여 줌으로써 임나 문제를 종결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찍이 일본학자인 쓰다는 『일본서기』의 내용이 백제의 역사책인 백제 삼서(百濟三書)를 인용, 개찬 내지는 윤색한 것이라 전제하고 임나일본부의 근거 사실인 신공황후 신라 정토(征討) 기사를 설화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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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 : http://www.edunet4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