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1894년 동학농민 전쟁의 진행과정과 주체
- 최초 등록일
- 2006.11.04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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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찬승 교수님의 논문(「1894년 농민전쟁의 주체와 농민군 지향」 『1894년 농민전쟁연구 5』 역사 비평사, 1장~2장(91-106쪽))을 요약한 글로 동학농민 운동의 과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겁니다.
목차
1) 1893년의 농민전쟁 준비단계
2) 1894년 1-2월의 고부봉기단계
3) 3-4월의 1차봉기단계
4) 5-6월의 전주화의와 7-8월의 집강소설치단계
5) 9월이후의 2차봉기단계
본문내용
1894년의 농민전쟁은 1893년 3월 동학교단의 최시형, 서병학 등의 주도에 의해 최제우의 신원을 위한 보은집회가 열리고 있던 시기에 전라도 금구에서 손화중, 전봉준을 중심으로 하는 독자적인 집회가 열림으로써 이미 그 단초가 마련되고 있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해 금구집회에는 전라도 지방의 동학교도들이 주로 집결하였고 그 지도자는 손화중, 전봉준 등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1890년대초 현실의 변혁을 위해 동학의 기치 아래 집결하였으며, 동학의 조직력과 자신들의 지도력을 강화하면서 농민전쟁의 기반을 조성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보은 집회의 참가자들의 구성은 다양했었다. 당시의 현실에 불만을 가진, 변혁지향적인 성격이 강한 지식층과 탐관오리의 횡포에 시달림을 받은 요호부민층, 그리고 중소지주나 부농층에 해당하면서도 향촌사회에서 이렇다 할 세력을 가지지 못한 하층양반이나 평민층도 참가했을 것이다. 또한 절량농민(絶糧農民)과 몰락상인, 채무농민, 경제적으로 몰락한 영세농민, 영세상인층은 당시 피지배민중 가운데 가장 다수를 점하고 있는 계층으로 보은 집회에 다수가 참가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오랜 중세적 신분제하에서 박해를 받아오면서 그같은 신분제적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가진 자들도 본 집회에 참가했을 것이다. 이들은 당시의 광범위한 사회 불만계층으로서 동학의 조직안에 들어가 ‘신원`운동과 ‘척왜양`운동을 통하여 하나의 변혁운동세력으로 형성되는 과정에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