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윤리]식인습관
- 최초 등록일
- 2006.04.18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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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식인습관에 대하여 조사한 리포트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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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먼저 중국의 식인습관을 알아보자.
얼핏 중국 문명하면, 찬란하고, 발달된 문명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그 찬란하고 문명이 발달했던 중국에서 근대까지 식인 풍습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대개, 우리는 어릴 때부터 `타잔`같은 영화나 모험가들의 오지 모험기를 보고 들으면서 식인 풍습은 미개한 야만족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중국 같은 문명국에서도 식인 풍습이 존재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은 인육을 장에서 내다 팔 정도이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인육을 즐겼던 것이다.
식인문화는 중국 5천년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는데 이미, 주나라 때 율령 체제로 `살육의 형`을 규정했다. 그러나 이전부터 최초의 식인 이야기는 중국의 전설적인 왕조인 하나라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들을 죽인 원수를 죽여 육장(肉醬)을 만들어 원수의 아들에게 먹기를 강요한 여인 이야기이다. 유교는 `복수주의`를 인정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장려한 면이 있어 복수에 의한 식인행위가 있었다.
`부모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불구대천, 不俱戴天)`는 생각으로 심하면 부친의 원수를 29대까지 갚기도 했다. 복수할 때는 한 칼에 숨통을 끊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천 갈래, 만 갈래로 잘랐으며 때로는 고기를 잘라먹고 심장과 간을 꺼내어 씹어 먹으며 뼈까지 갈아먹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식인 기록이 나타난 최초의 정사인 <사기(史記)>는 중국 최초의 역사왕조인 은 왕조(주나라 이전의 왕조)의 마지막 임금 주왕이 신하들을 `해(인체를 잘게 썰어 누룩과 소금에 절인 고기)`, `포(脯, 저며서 말린 고기)`, `자(炙, 구운 고기)`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해, 포, 자`는 이후 중국 춘추전국시대까지의 인육 조리법의 대표격으로 계속 등장한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인 공자는 이 `해`를 즐겨서 해 없이는 식사를 안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공자가 아끼던 제자 자로가 위나라의 신하로 있다가 왕위 다툼에 휘말려 살해되고, 그의 시체는 잘게 토막 내어져 해로 만들어지고 말았다. 이 해는 사자에 의해 공자의 식탁에까지 전해진다. 이 일 후로 공자는 그렇게 좋아하던 해를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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