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강화 고인돌, 마니산 첨성대 답사
- 최초 등록일
- 2005.12.12
- 최종 저작일
- 1997.01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500원
소개글
유적에 대한 전설, 유래와 당시 정치경제사회적인 면을 고찰해보고, 보존상태와 개선점에 대해 적었으며, 여정도 자세히 적었습니다.
의견을 많이 적어서 A+받은 자료입니다.
===================================================
교수님께서 적정분량을 원하셔셔 문장문장마다 중요한 말들만 적었으며, 객관적인 내용보다 의견을 많이 적어서 다른 답사 레포트와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이기에 좋은 점수를 받을 것입니다.
목차
1.강화고인돌
2.마니산 참성단
3.유물 보존 상태, 개선점
[첨부]관련 문헌
본문내용
①강화고인돌
우리는 고려궁지를 거쳐 강화도 부근리에 있는 강화 지석묘로 향했다. 고인돌 광장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도로에서 약간 떨어진 밭 가운데에 탁자 형태의 고인돌 한 개가 독립해 있었고, 주변은 공원처럼 형성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입장료와 주차료가 무료여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둘러 볼 수 있었다. 지석묘 앞에는 넓은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었고 잔디밭 중간 중간에 선사시대의 움집 모형과 공룡 모형이 놓여져 있었다.
강화도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던 곳으로, 이 강화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로 알려져 있다. 강화도 곳곳에 남아 있는 지석묘와 단군이 쌓았다는 참성단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 이후에도 사람들이 계속 살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988년부터 91년까지의 조사가 있기 전까지는 사적 137호의 대형 고인돌만이 독립적으로 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조사에 의해 여러 기의 고인돌이 더 확인되었고 이는 당시 이 지역의 사회상을 살펴보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남방식 고인돌은 받침돌이 짧고 북방식 고인돌은 받침돌이 긴 것이 특징인데 이 강화 지석묘는 받침돌이 길었다. 북방식 고인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알려진 바로는 고인돌 중 가장 남쪽에 있는 것이 이 강화 지석묘라고 한다. 특히 현재 조사된 북방식 지석묘의 분포로 보아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부근리 에는 이 지석묘 말고도 여러 개의 고인돌들이 분포하고 있었다. 강화도 전체에는 44기의 북방식 고인돌무덤이 있고 35기의 남방식 고인돌이 확인되고 있다고 한다. 강화도의 고인돌군은 남방식과 북방식이 절반씩 혼재되어 있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한다. 강화도는 이러한 고인돌 외에도 돌칼, 돌화살, 촉 등 선사시대의 유물이 많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지석묘의 남쪽에 있는 고려산 부근에는 고인돌이 여러 개가 있다고 한다.
참고 자료
고조선의 돌돌림 유적에 관한 문제, 하문식, 단군학회, 단군학 연구 제10호, 20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