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대사]티모시 브룩의 쾌락의 혼돈을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5.12.01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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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티모시 브룩의 쾌락의 혼돈 감상문 입니다.
목차
이갑제
皇․民의 피드백의 결과
명대 상업활동
일조편법
식량조달의 변화
소극적인 해상활동
元의 계승국으로서 明에 대한 인식의 수정
본문내용
중국 명대의 상업과 문화라는 딱딱한 주제를 좀더 이야기 식으로 접근한 책인 쾌락의 혼돈을 읽었다. 사실 읽었긴 했지만 워낙 이해력이 부족하고, 평소 역사를 좋아한다고는 하나 문화사에 그다지 흥미를 갖지 못해서 책을 완전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이갑제
명은 1367년 홍무제가 새왕조를 선포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명을 건국한 홍무제는 빈농출신으로 어린시절 기근의 직접적인 희생자이기도 하다. 그런 환경이 홍무제가 엘리트층에 대한 반감이 있었기에 그는 개국공신들을 평민으로 격하했고 그의 정책은 엄격한 규제속의 중앙집권제 수립이었다. 책에서는 600년 후의 공산당 정권 수준이라고 하고있다. 홍무제는 도가적 이상에 바탕을 둔 자급자족적 농경생활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농경을 기본으로 한 각가의 공동체가 외부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단절되게 하여야 했다. 대명률에는 개인의 이동 거리를 20리로 제한하였고, 부친의 직업을 아들이 그대로 물려받도록 하여 신체․사회적으로 변하지 못하게 법률로 통제하였다. 이갑제는 홍무제의 이상을 실현 시키는 제도이다. 요역 및 다른 동원을 위해 가구와 인구를 등록하는 포괄적 체제로 10호를 1갑으로 하고 10갑을 1리로 하여 리에는 이장을 임명하고 갑에는 갑수를 임명하여 이장에게 세금징수를 담당하도록 하고 제도이다. 이갑제로 농촌지역에 뚜렷한 틀의 조직이 형성되었지만 전국적인 완전확대는 사실상 어려웠다. 중국지역은 광활하고 실제적의 평원은 조금 밖에 되지 않았었기에 지형․교통․통신상의 장애로 인한 듯 하다. 홍무제가 의도한 이갑은 조직적인 결속에 기초하여 평등한 공동체를 의도하였지만 현실은 부(富)와 혈연관계에 의한 계층화가 일어났기에 제도 본질의 평등 논리와는 상충되었다. 그래도 명초만큼은 홍무제에 의한 엄격한 통제가 있었기에 비현실적은 아니었었지만 결국 이런 통제가 차즘 무너지면서 이갑제는 명목상의 부세징수제에 불과 하게 된다.(1544). 이갑제에서 세금은 인구수로 부과하기 때문에 세금을 덜내기 위해서 백성들이 호구등록을 하지 않아(일종의 탈세 행위같다). 명대 인구수는 실제보다는 적게 조사될 확률이 높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