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와르] 대만영화, 홍콩영화
- 최초 등록일
- 2005.06.23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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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대만 영화
1) 80년대 뉴 웨이브 이전의 대만영화
2) 80년대 뉴웨이브 영화
2. 홍콩영화
1) 1970년대 이전의 홍콩영화
2) 1980년대 이후 홍콩영화
본문내용
1. 대만 영화
1) 80년대 뉴 웨이브 이전의 대만영화
중국 본토의 영화가 서구와 미국의 주도로 들어온 반면 타이완 영화는 철저하게 일본의 식민지 영화로 시작되었다. 1901년 일본인 다카마쓰 도요지로가 타이베이 번화가 시먼딩을 찍은 것이 효시이며, 1923년에 대만인이 만든 최초의 영화 ‘老天無情’이 완성되긴 했지만 대부분의 스태프는 일본인이었고 그 내용도 일본의 식민통치를 선전하는 것이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대만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영화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이 상황은 1949년 본토에서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이 대만으로 건너온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국민당 정부는 중국공산당 못지않게 엄격한 검열을 실시했으며, 영화는 모택동의 공산당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 투쟁의 선전도구로 전락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50년대에는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거나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잠재울 수 있는 수준 이하의 애정영화나 무협영화, 또는 반공 전쟁영화가 전부였다. 또한 선과악의 대비구조를 따르는 영웅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우월성과 정통성을 강조하였고, 해피엔딩의 애정영화를 통해 사회전체의 우울한 분위기를 없애고 국가건설에 동참하도록 유도하였다.
60, 70년대에는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무협, 애정, 전쟁, 경극, 액션영화 같은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중시하는 상업오락영화가 발달하게 되었고, 이런 영화의 제작 편수가 늘어나게 된다. 李翰祥의 ‘량산보와 주잉타이’(1963)나 胡金銓의 ‘龍門客棧’ 같은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자유로운 창작은 여전히 불가능했다.
참고 자료
중국영화사, 슈테판 크라머 지음, 황진자 옮김, 이산
중국영화의 어제,오늘,내일, 이종희, 책세상
홍콩영화의 이해, 김지석, 강인형 공저, 한울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