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 화성성역의궤
- 최초 등록일
- 2005.03.05
- 최종 저작일
- 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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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화성 성역 의궤 도설
정조는 17세기 후 청나라에 연행사로 내왕하던 이른바 실학자들의 실용지학(實用之學)에 대한 견문, 정약용 등의 성제(城制)에 관한 의견과 과학적 설계지침을 바탕으로 중국 축성제도를 참고하고, 여러 신하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정말로 三南의 요충이요, 엄연히 서울의 保障之地로서 참으로 이른바 만세에 길이 의지할 만한 터" 인 화성을 건설토록 하였다.
"화성성역의궤" 녹로 도해
이 화성은 이전의 우리 나라 성곽제도와 많은 점이 다르다. 정조는 "우리 나라의 성제는 삥둘러서 담을 쳐서 막는데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 화성의 제도는 보수로 분배하여 성가퀴를 벌여짓고, 성가퀴마다 비로서 수삼인이 서서 족히 좌우를 내다보고 엿볼 수 있으니 정말 수어(守禦)에 아주 편하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지은 후에야 비로소 성의 제도라 할 수 있다."고 종전 성곽제도의 단점을 보완하여 건설하였다.
화성 축성은 실학자들의 사상과 과학적 설계지침이 바탕이 되었다. 특히 기존의 성곽의 약점이었던 방어능력을 높이고 튼튼한 성을 쌓기 위하여 여러 방안들을 연구하였다
화성 축성에는 다산 정약용의 역할이 매우 컸다. 다산은 화성을 쌓기 위하여 모두 7편의 글을 지었다. 거기에는 성의 기본형태와 규모, 방어시설, 공사방법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설을 설치하고 기구들을 고안하였다. 공사 중에 석재를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거중기를 만들고, 녹로라는 밧줄 감는 장치도 만들었다. 이런 기구들은 백성의 수고를 덜고 공사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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