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이상화 시인의 시세계
- 최초 등록일
- 2004.11.27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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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시인의 시를 연구한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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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상화(尙火) 이상화의 호. 상화(尙火․想華), 또는 무량(無量), 백아(白啞).
이상화는 1901년 음력 4월 5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다. 명망 있는 가문의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일찍 사별하는 바람에 상화를 비롯한 형제들은 백부인 이일우(李一雨)에 의해 훈도된다. 주로, 한문 수업을 받다가 상화는 1915년 서울 중앙학교에 입학한다. 학업도 우수하고 야구에서 재능을 보였으나 삶에 대한 번민으로 1918년 3년 수료 후에는 다시 낙향하여 방황을 거듭하게 된다. 이런 청소년기의 방황 끝에 그는 이 해 여름 수개월간에 걸쳐 금강산등을 풍찬노숙 바람과 이슬을 무릅쓰고 한데서 먹고 잠. 큰일을 이루려는 사람의 고초를 겪는 모양.
하는 방랑길로 접어든다. 이 시기에 방랑길에서 조국의 아름다운 국토에 대한 재발견으로 인해 국토애 또는 조국애에 눈뜨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당대의 민족 구성원 누구에게나 그러했던 것처럼 1919년 3․1운동은 이상화로 하여금 새로운 자아에 대한 각성과 민족에 대한 재발견의 계기가 된다. 그는 3월 8일 백기만(白基萬) 등과 함께 대구거사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배후 조종 혐의로 일제의 추적을 받아 서울로 도피하여 서대문 밖 영동에서 친우인 박태원(朴泰元)의 하숙에 머물게 되지만 여의치 않은 사정으로 다시 귀향하게 되어, 백부의 엄명으로 公州 서한보(徐漢輔)의 딸 온정(溫渟)과 결혼한다.
1921년에 다시 상경하여 동향 친구인 현진건(玄鎭健)의 소개로 박종화(朴鍾和)를 만나게 되고 그들과 의기투합하여 <백조>에 가담한다. 동인 가담과 시「말세 의 희탄」,「단조 」발표로 인해 비로소 시인 이상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어 1923년 9월 <백조> 3호에 「나의 침실로」가 발표된다. 시는 애타는 연애 감정과 숨 막히는 성적 충동을 박진감 있게 묘파한 시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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