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 미하일 바흐친-격동기 러시아 지식인상
- 최초 등록일
- 2004.10.27
- 최종 저작일
- 2004.07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목차
1.들어가는 말
2.미하일 바흐친과 요셉회
3.바흐친과 성세라핌협회
4.바흐친과 플로렌스키 신부
5.바흐친과 보스크레세니
6.보스크레세니와 교회 통일
8.바흐친의 쿠스타나이 유형
9. 나오는 말
본문내용
1.들어가는 말
러시아의 종교철학자요 문예이론가인 미하일 바흐친(1895~1975)은 주로 1920년대 후반에 집중적으로 저술 활동을 하였지만, 1929년 그가 스탈린 정부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오랫동안 유배생활을 한 뒤로는 세인에 의해 거의 잊혀져 있었다.
그러던 그의 가치를 재인식 시킨 것은 고리키 세계문학연구소의 젊은 학자 바짐 코지노프와 모스크바대학의 문학 교수 블라디미르 투르빈이었다.
바흐친의 경우는 모호한 종교적 이유에서였던 것이다. 바흐친은 레닌그라드의 몇몇 단체들과 관련을 맺고 있었으며, 종교에 관한 강연으로 젊은 이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었지만, 당시 그는 종교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었는데, 앞으로 상세히 살피게 되겠지만, 특히 플로렌스키 신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2.미하일 바흐친과 요셉회
우선 미하일 바흐친이 가입했던 보스크레세니(재생), 성(聖)세라핌협회, 그리고 요셉회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바흐친이 관계하고 있던 분파(요셉파)는 1927년 7월 소비에트의 장로 세르게이가, 교회가 국가에 종속되는 것을 지지하는 선언문을 냈을때 이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생겨난 단체였다.
1920년대에 바흐친이 관여하고 있던 三大 종교 철학 집단, 즉 보스크레세니.성세라핌협회.요셉회 등은 상호간에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