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정치_유럽연합 역사 정리_실패한 공동체와 경제적 결속심화를 향한 방향 전환
- 최초 등록일
- 2024.03.13
- 최종 저작일
- 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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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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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배경
○ 1949년 소련 원자탄 실험 성공, 중국 공산화
○ 1950년 한국전 발발 :
■ 유럽 대륙에서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열전(Hot War)에 대한 우려
○ 서독의 재무장 필요성 : 나토(NATO) 내에서 서독의 유럽안보 기여
■ 나토 : 1949년 4월 4일 발족
■ 바르샤바(Warsaw) 조약기구 : 1955년 나토에 대항해 발족
○ 서독의 재무장 수준을 견제하려는 프랑스의 의도
2) 전개
○ 1950년 10월 24일 플레벵 플란(Pleven Plan) :
■ 서독의 재무장을 유럽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계획
■ 유럽공동군 창설안
∙ 유럽국방장관 지휘
∙ 서독의 군사력 분산 : 대대급(약 1,000명) 단위로
∙ 유럽공동군 구성 : 서독군 전부, ‘프랑스,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 군 일부
∙ 서독을 유럽공동군의 형태로써 나토 가입
○ 아데나워 서독 총리 : 동등한 군사적 참여권 주장
○ 미국 : 무시(나토 약화 우려), 나토(NATO)를 통한 독일 재무장 의도
○ 한국전쟁 발발 이후 전세 불리 : 세계대전 불안감 가중
○ 1951년 미국과 프랑스 협상 : 유럽방위공동체(EDC) 창설안
<EDC 창설안에 따른 서독의 육해공 총 병력 규모>
육군
12개 사단(약 310,000명) - 각 6개 무장 보병 및 기계화 보병
해군
186대의 전투용 함선, 54대 항공기 보유
공군
1,326대 항공기 보유
총병력
약 500,000명
○ EDC 창설조약 체결(서명) : 1952년 5월 27일 파리에서 ECSC 6개국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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