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천박물관 기행문] 복천박물관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4.07.15
- 최종 저작일
- 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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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복천박물관에 가게 된 동기 및 집필방향
1복천박물관 제1전시실
2복천박물관 제2전시실
3야외전시관 및 고분공원
(문서내 구분은 없습니다.)
본문내용
삼한시대 전기의 토기들은 민무늬의 굽다리 접시가 많았다. 부산박물관에서 본 가야시대 토기들은 밑부분에 삼각이나 사각형등등의 가지각색의 모양의 구멍이 뚫린 토기가 특징이였는데 삼한시대 전기토기는 약간 투박한 감촉일 것 같은 민무늬였다. 삼한 시대가 삼국시대의 전초전 역할을 했었음을 상기한다면 아마도 시대를 걸쳐 발전하는 토기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삼한시대에 유행하던 토기는 와질토기라는 토기였는데 와질토기에 대한 설명보다 느낌위주로 설명을 하자면 색깔이 주로 녹색바탕의 연하고 진한 것들이 존재하였다. 토기들의 모양은 비슷해 보였지만 특이한것은 옆에 달린 뿔같은 손잡이였다. 그뿔을 보면서 생각하지만 저 걸 들고 다니기가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냄비처럼 약간 밑으로 기울여서 손잡이를 만드는 것이 편리하며 간편할 것이다. 그러면 왜 저런 뿔모양의 손잡이를 만들었을까? 그에 대해 나는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는 삼한시대에는 철기문화가 보편화 되면서 농경문화가 정착되는 시기였다. 농경문화의 정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건 이주문화가 없어지고 한 곳에 모여사는 문화가 있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므로 토기들을 들고 다니는 경우보다 집에 두고 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토기를 들고 다니기 위한 편리함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