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과 사우디아라비아
- 최초 등록일
- 2020.02.24
- 최종 저작일
- 2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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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남아시아 현대사 중 이라크 전쟁에 관하여 다룬 레포트입니다. 많은 참조 바랍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미국의 오판과 실수
1. 미국의 오판
2. 탈바트화 정책
3. 수니파와 시아파의 봉기와 알카에다 세력의 유입
Ⅲ. 종파 내전으로서 이라크 전쟁의 전개 양상
1. 알아스카리 사원 테러
2. 이라크 전쟁이 종파 내전이라는 근거
3. 종파 내전의 전개 양상
4. 미국의 대응 실패
Ⅳ. 맺음말
본문내용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의 석유시설에 대한 드론공격을 계기로 사우디와 이란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사우디와 이란은 같은 이슬람국가이면서도 숙명적 경쟁관계에 있다. 본고는 이들 두 나라의 관계가 지금과 같이 전쟁 아닌 전쟁을 하면서 숙명적인 경쟁관계에 있는 이유를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사우디와 이란 이들 두 나라는 같은 이슬람 국가라는 공통분모 속에 속해있지만, 민족적으로 사우디는 아랍인이고 이란은 페르시아인 이라는 차이점도 있고, 종교적으로 같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 림이지만 사우디는 수니파이고 이란은 시아파라는 차이점도 있다. 국가의 체제도 사우디는 왕정이 고 이란은 이슬람 공화국(벨라야테 파키)이라는 신정국가 체제이다. 이러한 차이점들과 더불어서 사우디와 이란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주국으로서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전의 사우디와 이란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주국으로서 경쟁 관계에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직접적인 무력충돌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현재 이란의 전 정권인 팔레비 왕조와 사우디는 친서 방, 친미 정책을 펼친 동맹국들로 미국과 유럽의 강력한 지역동맹국이었다. 그래서 사우디와 이란 사이는 그렇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이러한 관계가 파탄 나게 된 것은 1979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1902.09.22.~1989.06.03.)의 ‘이란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부터이다. 이란 왕정이 붕괴하고 이슬람 신정정치가 이란을 통치하면서 한때 미국의 강력한 지역동맹국이었던 이란은 미국과의 대립 구도에 들어갔다. 이로써 이란에 반미 이슬람 정치체제가 성립하였다. 하지만 미·소 양국의 비호와 영향력 아래에 존속하는 주변 아랍 제국에게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심각한 위험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영·불의 동아랍 지역 분할계획에 인공국가로 탄생한 이라크가 그 취약성으로 인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여 신생 이란에 군사적인 도전을 하기 시작하였다.
참고 자료
Peter Bergen, The Longest War: The Enduring Conflict between America and Al-Qaeda, Free Press(New York: 2011), p.183.
Sabrina Tavernise, “20 Die as Insurgents in Iraq Target Shiites,” The New York Times, September 17,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