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의 건설자 요시다 시게루에 대한 비판적 고찰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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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면서Ⅱ. 요시다의 외교 전략과 평가
1. 요시다의 외교 전략
2. 요시다에 대한 기존의 논의와 평가
Ⅲ. 제1·2차 요시다 내각의 성립 과정
1. 하토야마의 공직 추방과 제1차 요시다 내각의 성립
2. 쇼와전공(昭和電工)사건과 제2차 요시다내각의 성립
Ⅳ. 중화민국의 내전
1. 내전의 초기 동향
2. 내전의 진행과 미중관계의 악화
3. 미국의 역코스(Reverse Course)정책
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 조약 이전의 국제적 동향
2. 강화회의의 쟁점과 진행방향
Ⅵ. 나오며
본문내용
1945년 8월 15일 정오,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면서, 쇼와(昭和)천황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종전의 조칙을 전 국민에게 고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일본의 전후사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공습경보에 떨어야하는 걱정은 사라졌지만, 패전국의 지위에 처해진 일본의 앞날은 상상하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다. 이 때, 일본에 혜성처럼 나타난 지도자가 소위 ‘전후 일본의 건설자’라고 불리는 요시다 시게루였다.전후 일본의 경제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경제안정본부가 정리한 <태평양 전쟁 피해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국부자산총액의 전쟁 피해율은 종전 1944년의 국부에 피해 35%, 평화적 국부 총액(무기·함정류 제외)은 25.4%에 달했는데, 이 피해 총액은 종전 직후인 1946년의 국민총생산액과 거의 필적할 만큼의 양이었다. 강태현, 『(정·재·관의 삼각관계로 풀어보는)일본 전후 경제사』, 서울: 오름, 2000, p. 31
당시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상실한 국부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아무리 빠르게 진행되어도 수십 년은 걸릴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한, 당시 국내에는 인플레이션이 벌어지고 있었고, 주력 공장은 배상지정으로 폐쇄된 데다 원자재는 완전히 고갈되면서, 근로자들의 의욕은 몹시 저하되었다. 국내 생산력은 현저히 떨어졌으며, 인플레이션은 맹렬한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요시다가 총리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 1년만인 1955년이 되면 이미 전전(戰前)의 상태를 완벽히 복원해내는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하게 된다. 강태현, 앞의 책, p. 88
그의 전후 일본 구상 전략이 매우 성공적이었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 작업을 10년 만에 달성한 결과를 요시다의 개인적 능력에서 찾고자 했던 기존의 관점과는 달리, 국내·외적인 상황과 함께 기존의 요시다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한 번 고찰하는 것이다. 가장 핵심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반드시 요시다여야만 했는가?’하는 물음이며, 앞으로 이 물음에 대한 답에 최대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강태현, 『일본 자민당 파벌투쟁사』, 서울: 무당미디어, 1998강태현, 『(정·재·관의 삼각관계로 풀어보는)일본 전후 경제사』, 서울: 오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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