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6.05.12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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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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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기녀의 기원과 제도화
1. 기녀의 기원과 역사
2. 기녀제도 발달
Ⅲ. 조선시대 기녀의 생활
1. 교육과 일상생활
2. 역할
Ⅳ. 기녀의 사회적 성격
1. 사회적 성격
2. 여성사적 성격영향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몸은 천민이요, 눈은 양반이라는 말처럼 이중적 신분구조 속에 위치했던 기녀는 조선시대 여성문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식민통치라는 시대적 조류에 휘말리며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예능적인 면은 평가 절하된체, 창기와 동일 개념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기녀는 성(性)으로는 여성, 계급으로는 천민에 해당되지만, 그들이 교류할 때는 남성, 양반 계급과 어울리게 되는 이원적 구조를 지니게 된다. 기녀가 여성의 신분으로 태어났으면서도 남성들의 사회와 가깝다는 것은 그들이 여성의 사회에 쉽게 귀속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들이 천민계급으로 사회적 비난을 받는 대상이긴 하였어도, 한편으로 자유롭고 호화로운 생활은 일반 부녀자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유로움이란 남성들과의 만남을 전제로 하면서도, 자신의 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전문 예능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라 할 수 있다.
기녀는 당시의 흔치 않은 전문직업인으로 생활했다는 점, 일반 부녀자들이 남성들과 접촉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성들과 동등한 만남을 이룰 수 있었다는 사회적 성격으로 인해 여성적인 섬세함과 남성적인 대범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풍속(문화)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중 략>
Ⅲ. 조선시대 기녀의 생활
1. 교육과 일상생활
(1) 교육
관기는 관(官)에 속한 비(婢)였으므로 공적(公的) 의무로 역(役)을 행해야 했다. 따라서 경기(京妓)의 경우는 국연(國宴)에서 주악(奏樂)과 가무(歌舞)를 의무적으로 실시했다. 기는 이허한 진연(進宴)등에서의 주악(奏樂)을 능숙하게 하기 위해 국가에서 실시하는 일정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관기들은 대개 15세부터 50세까지 기녀의 소임에 종사하였는데 10대의 어린 기녀를 동기(童妓), 이와 반대의 경우는 노기(老妓), 퇴역한 후의 기녀는 퇴기(退妓) 또는 퇴물(退物)이라 하였다. 이렇게 볼 때 기안에 수십 명이 있다 하더라도 기녀로서 제대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인원은 이보다 훨씬 적은 숫자임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가와무라 미나토, 『말하는 꽃 기생』, 유재순 옮김, 소담출판사
변원림, 『역사속의 한국여인』 ,一志社
정병모 『한국의 풍속화』, 한길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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